'도둑들' 상업영화 테크니션의 진화
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상업영화 진영의 흐름이 크게 두 갈래로 진화해 왔다고 본다. 한 가지 갈래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임상수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상업적 작가주의 계열의 감독군, 또 하나의 갈래는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의 영향권 안에서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며 상업영화의 목표, 즉 흥행적 전략에 충실하려는 감독군이다.(반면, 21세기 초반까지 강세를 보였던 프로듀서형 감독들, 이를테면 강우석, 김상진, 이준익 등은 최근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부당거래>의 류승완, <아저씨>의 박정범,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써니>의 강형철,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군 가운데 창작적 에너지와 흥행적 성과 면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이는 단연 최동훈이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이후 <타짜>와 <전우치>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이른바 ‘대박’을 쳤다. 그리고 올 여름에 내놓은 <도둑들>로, 이글을 쓰는 지금, 그의 생애 처음이자 한국영화로는 여섯 번째 천만 영화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도둑들>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시리즈와 같은 케이퍼 무비, 또는 하이스트 장르의 틀을 빌어와 집단 절도 행각의 음모극을 풀어낸다. 이 영리한 기획은 마카오 박(김윤석)이 기획한 국제 합동 절도단의 협력 뒤에 인물들의 과거사와 관련한 상호 협잡과 배신의 플롯을 겹쳐 놓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쾌감을 안겨준다. 최동훈은, 또 한번 영리하게도 이 영화가 <오션스> 시리즈의 한국적 아류로 비쳐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두 개의 액션 장면을 통해 상승하는데, 하나는 홍콩 누아르의 유명 배우 임달화를 활용한 주차장 총격 액션 신이고, 또 하나는 극 후반부를 장식하는 부산의 아파트 외벽 액션 신이다. <무간도>나 <흑사회> 등을 연상시키는 임달화의 총격 액션은, 한국영화 전성기 이후 나온 오락 영화 중 단연 압권이며, <본> 시리즈의 아크로바틱하면서도 둔탁한 액션 신의 느낌을 끌어온 듯한 외벽 액션은 최동훈이 상업영화적 테크니션으로서의 기량을 십분 발휘한, 최고의 장면이다.
캐릭터를 주무르는 연출의 솜씨도 남다르다. 한국과 홍콩을 합쳐 무려 열 명의 도둑들을 배치했지만, 그 어떤 인물도 허투루 장식적이지 않다. 특히 ‘예니콜’ 역으로 분한 전지현은 이 영화를 통해 <엽기적인 그녀> 이후 사실상 대표작이 없었던 굴레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녀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아준 최동훈의 덕분이다.
장르적 완성도에 집착적으로 천착하는 상업영화 테크니션들의 진화는, 한국 영화의 산업적 파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그 현상의 맨 앞에서 최동훈이 달리고 있음을 <도둑들>은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