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하일수의 할리우드 통신] <쉐임 Shame>

cinemAgora 2012. 1. 8. 13:32

 


남자는 하루에 노란 물과 하얀 물을 비슷한 횟수로 내린다. 뉴욕 맨해튼 고층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아침 샤워하며 자위 한 번, 출근해서 한 번, 퇴근해서 화장실에서 한 번. 오늘은 집에 창녀를 불러서 섹스 한 번, 내일은 인터넷에서 꼬드긴 여자랑 한 번, 모레는 바에서 만난 여자랑 어두침침한 강변에서 한 번. 게다가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틈틈이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본다. 전화가 와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남자는 잘생겼다. 키가 크고 멋지다. 삼십 대 초반인데 직장도 번듯하다. 친절하지만 과묵하다. 남자는 관계를 하지만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섹스 한 번으로 끝이지, 여자친구가 없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여자가 남자 집에 침입한다.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 타이거 우즈가 연상된다. 남자는 분명히 섹스 중독이다. 하지만 자신을 혐오한다. 정신병인가? 어려서 성적 학대를 받았나? 미국 군산복합체의 실험동물인가? <쉐임>은 이른바 예술영화답게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는다.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참을성 많은 미국 평단에서도 도대체 뭐하는 영화냐?, 는 볼멘소리가 높다. 가장 인내력을 시험하는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바에서 영화 <뉴욕, 뉴욕>의 주제곡을 느릿느릿 처연하게 부른다. 카메라가 가수를 내내 클로즈업하면서 가수는 끝까지 부른다. 원곡보다 일 분 삼십 초를 늘려서 대략 오 분이 걸리는데 한 평론가는 체감시간이 삽십 분이었다며 끔찍해했다.

남자 주인공 마이클 파스벤더는 <쉐임>으로 201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2011년 올해의 연기자' 중 2위로 선정됐다. 수염을 깎은 파스벤더는 독일 병정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독일 피와 아일랜드 피가 섞였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로 유명한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성도 다르고 무관하다. 이전에는 <제인 에어>, <인글로리어스 배스터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나왔고, 스티븐 소더버그와 리들리 스코트의 차기작에도 나온다.

여자 주인공은 영국 출신 캐리 멀리건이다. 전작 <언 에듀케이션>, <드라이브>에 비교하면 많이 안 예쁘게 나왔다. 차기작은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로 유명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다.

감독이자 시나리오를 맡은 스티브 맥퀸은 영국 출신으로 32년 전 타계한 배우 스티브 맥퀸과 동명이인이다. 역시 파스벤더를 기용했던 감독 데뷔작 (2008)로 칸 영화제에서 골든 카메라 상을 탔다.


사랑이 없는 섹스 영화 <쉐임>은 미성년자(17세 이하) 관람불가 NC-17 등급을 받았다. 어른이 동반하면 관람 가능한 R 등급과 가장 큰 차이라면, NC-17 등급 영화는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해주지 않는다. 대도시나 대학가 소규모 극장에서나 틀어준다. 미국에서 한 해에 NC-17 등급을 받는 영화는 한두 작품 정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쇼걸>이 같은 등급을 받았다. 미국 등급위에서는 전면 전신 누드, 오럴 섹스, 그룹 섹스가 나온다며 <쉐임>에 NC-17을 줬다. 하지만 <쉐임>은 에로틱하지도 음탕하지도 성적인 흥분을 안겨주지도 않고 담담하다. 한편 <쉐임>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국 영화 <쉐임>은 미국 내 10개 관에서 시작해서 개봉 3주차 현재 50개 관에서 상영 중이다. 미국 배급업체가 4억 원에 배급권을 사서 현재 미국에서만 13억 원 매출을 올렸다. 배급업체는 돈 벌었다. 실제 영화 예산은 대략 70억 원이라고 한다.

<쉐임>은 예술영화다. 화면이 아름답다. 하지만 두 번 보기는 괴로운 영화다.

-하일수(미쿡 사는 3M흥업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