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게 전문가란?

늙은소's 다락방 2010. 8. 21. 11:56 Posted by 늙은소

[무한도전] 외에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전문가의 영역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방송한다. 의과대학 실습수업에 참여한다거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한 테스트를 받는 등 개인의 도전을 다룬 프로그램부터,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처럼 여러 명의 고정 멤버가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포맷까지. 전문영역에 도전하는 예능이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온 [무한도전]은 패션모델을 비롯하여 스포츠 댄스에 도전했고,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으며, 요리를 배웠고, 악기를 익혀 밴드를 조직해 콘서트를 열고,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가요제를 개최하였으며, 에어로빅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막 그들은 프로레슬링에 도전했다. 여기서 열거되지 못한 도전도 상당수다.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 그들이다. 그런데 도전 종목과 함께 매번 달라진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구할 것인가. 또한 그들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개입하여 도전을 성취할 것인가의 문제다.

여기서 몇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보자.
스포츠댄스 대회에 참여하였을 때, 그들이 직접 안무를 만든 건 아니었다. 함께 춤을 춘 파트너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스포츠댄스에 문외한인 일반인이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누군가 '이것은 도전이 아니다'라 비판한다면? 또 다른 예. 봅슬레이 도전 편. 4인으로 한 팀을 구성하는 봅슬레이에서 무한도전은 3명의 멤버와 한 명의 전문가를 포함하여 팀을 구성했다. 만약 이들이 3명의 전문가에 한 명의 무한도전 멤버를 투입하여 팀을 구성하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누군가는 이를 두고 '무임승차'라며 비판했을 것이다. 반대로 무한도전 멤버 4인으로만 봅슬레이팀을 구성했다면? '안전불감증'이라는 표현 정도로 멈추지 않는 대대적인 비난기사가 쏟아졌을 것이다.
 

전문가의 영역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무엇에 도전하는가'에만 있지 않다. 전문가의 도움을 어느 정도까지 받을 것이며, 자신들의 힘으로 처리할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위의 그림과 같지 않을까. 스포츠 댄스나 에어로빅, 봅슬레이, 식객 등 이들의 도전은 그래프에서 왼쪽으로도 갈 수 있었고, 오른쪽으로도 갈 수 있었다. 그 위치에 따라 동일한 도전이 전혀 다른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전문가의 영향력이 낮은 단계인 1기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급성장하는 멤버들로 인해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장기화되거나, 전문가의 도움이 너무 클 경우(2기), 도전은 오히려 퇴색하게 되고 그들의 성장 역시 정체되어 시청자의 만족도가 점차 하락하기 시작한다. 만약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멤버 전원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노래를 사전 녹음한 다음 현장에서 립싱크로 불렀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혹은 [남자의 자격]이 실력과 팀웍을 갖춘 국립오페라단원들로 합창단을 만든 후 거기에 끼어들어가는 형식으로 '합창단에 도전한다'라고 말하였다면? (지금도 너무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선발한 게 좀 아쉽긴 하다.) 3기의 경우는 거의 없지만, (PD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만약 이런 형식으로 도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시청자는 물론이거니와 해당 영역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 가능성이 있다. 국가대표선수 3명에 무도 멤버 1인이 참가한 팀이 국가대표가 된다면 그로 인해 탈락한 특정인이 공개적으로 이를 비판할 수도 있는 일. 일반인의 도전이라는 취지와 무색하게, 전문가를 역차별하는 현상이 3기에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도전 버라이어티는 1기와 2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때로는 실수하고, 미끌어지며.

느 분야에 도전하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도전하는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청자로부터 비판받는 딜레마가 이들 프로그램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 속에서 그렇게 꼭 전문가의 영역에 도전해야만 하는 것일까?

[무한도전] 에피소드 중에는 전문가의 영역에 도전했음에도 낮은 수준의 도움으로 충분히 즐거움을 준 도전이 몇 개 있다. '도전 프로젝트 런어웨이'와 '디자인 전시회 참여'가 그것. 이 두 프로젝트 역시 전문가가 참여하였고, 아이디어를 검토해 주었으며, 제작 과정에도 잠시 출연해 중간 점검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매우 낮은 편이어서 완성된 의상과 디자인 제품은 완성도가 매우 낮았다. '식객'에서 판매 가능한 음식을 내놓았던 것에 비한다면, 디자인 관련 도전은 제품화가 불가능한 결과물은 만들었으니 완성도가 높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았던가.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2기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의 도움을 적게 받는 것이 오히려 안전한 전략이 될 수 있는데도 이들 프로그램이 자꾸만 2기로 진입하게 되는 것은 결국 유사한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하며 발생한 경쟁의식과, 언론들의 호들갑스러운 부추김 때문은 아니겠는가. 어설퍼도 좋으니, 무리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오래 함께 늙어가고 싶으니.

posted by 늙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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