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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즐겨봐 온 편이 아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만큼은 매회 빼놓지 않고 챙겨 보는 편이다. 누군가는 김수현 드라마의 이른바 '따발총' 대사톤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얄궂게 들려 싫다고 했지만, 이번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니 특유의 치고 받는 대사 스타일은 여전하되, 모든 인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걸 즐기게 됐다. 특히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 집의 둘째 아들 김상중과 리조트 대표 장미희가 나오는 대목에선 거의 자지러진다.

여하튼 '고만고만'한 한국 드라마의 지형도 안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러 면에서 작가 김수현의 중량감을 드러내보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경륜과 관록, 삶에 대한 성찰이 듬뿍 묻어나는, 미덕이 많은 드라마다.

물론 그 미덕 안에는 한국 드라마에선 타부에 가까운 동성애 설정도 포함된다. 나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편견과 시청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회를 거듭할 수록 두 사람의 동성 로맨스를 밀어 붙이는 김수현의 반골적 도전 정신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쪽이지만, 여기서까지 그 설정을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개의 한국 드라마가 결핍한 것들에 대한, 그러니까 드라마의 기본에 대한 그의 집착이 보여주는 미덕들이다.

표면적인 미덕, 그러니까 독특하게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은 대가족 드라마라는 점 말고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는 인물들의 직업적 정체성 안에서 입체감을 뽑아내는 그의 솜씨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모두 '노동'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에피소드에서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반드시 주요 인물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드라마 전개의 효율성이라는 면에서 빼도 무방한 장면들도 삽입되는데, 이를테면 호섭이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하거나 장비들을 정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매우 당연하지만 여타의 드라마들, 하물며 전문직 드라마조차 인물들의 연애사에 집중하느라 너무 쉽게 포기하고 가는 부분이다.

두번째 미덕 역시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다른 드라마에선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모든 인물들의 동선이 정확히 시간의 흐름에 맞춰 짜맞춰져 있다. 방금 저기 있던 친구가 난데 없이 휘리릭 뚝딱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 점프컷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 반드시 다른 인물이 같은 시각에 벌임직한 행동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그 뒤를 호섭이 지나가고 있다면 다음 신은 주방에 들어간 그가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신이 배치되는 식이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관계도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캐스팅비를 아끼기 위해 좁은 세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돌고 도는 작위적 관계들이다. 이를테면 A의 조카 B가 사귀는 C의 이모 D가 사실은 A의 전 애인이었다는 식이다. 물론 꽤 많은 인건비가 투입되겠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그런 돌고 도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사회적 범위 내에서만 관계를 이룬다.

이런 형식적 완성도의 틀 안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 내용적 가치를 더욱 고양시킨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저마다의 결함과 상처를 간직했지만 서로 아껴주는 가족 구성원들을 통해 혈통주의와 보수적 가부장제에 구속된 한국의 가족들이 오히려 잊고 살고 있는 진짜 가족애의 풍경을 드러내 보인다.

물론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가족의 모습은 다분히 이상주의적이다. 특히나 가장 이상적인 부부상이자 부모상을 보여주는 병태(김영철)와 민재(김해숙)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족이란 모름지기 세상에 나가 상처 받고 돌아온 이들을 보듬고 감싸주는 공간이라야 진정한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가족 구성원조차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 몰아치는 우리에게 아득해져가는 가족애의 진수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형식적 완결성에 집착하는 김수현의 완고함은, 그 메시지에 설득력을 얹는 데 아주 큰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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