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액기스는 볼거리보다 이야기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했던 나도, 딱 하나 굴복할 수밖에 없는 볼거리가 있다. 바로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사람 자체가 볼거리가 되고 스펙터클이 될 때, 나는 사족을 못쓰고 빠져든다. 내겐 롭 마샬의 신작 뮤지컬 영화 <나인>이 바로 그런 영화다.
상상만 해보시라. “어쩌면 저토록 멋지게 늙어갈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인공이다. 그의 주변을 미녀들이 감싸는데 이 사람들이 그냥 미녀가 아니다. ‘요부’ 연기만큼은 현대 영화계에선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스페인의 페넬로페 크루즈. 정숙과 도발을 오가는 프랑스의 마리옹 꼬띨라르. 그리고 할리우드의 별 니콜 키드먼과 엄청난 가창력을 과시하는 케이드 허드슨. 블랙아이드피스의 보컬 퍼기. 영국의 연기파 주디 덴치와 전설의 이탈리아 배우 소피아 로렌까지.
이런 사람들이 장면마다 번갈아 가며, 전문 가수들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솜씨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데, 애간장이 타 들어가다 못해 녹아 드는 게 당연한 노릇인 것이다. 그렇게, 영화 <나인>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배우들을 한 다발로 묶어 놓고 관객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 잡는 영화다. 사실, 뮤지컬의 팬이든 아니든,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흡인력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이탈리아 영화계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의 내용은 자못 통속적이다. 잘 나가는 영화 감독 귀도는 창의력이 말라 붙어 각본도 쓰지 못한 채 새 영화의 제작에 착수해야 할 처지다. 머리가 아픈 그는 기자회견 도중 다른 도시로 피신하고, 정부인 칼라(페넬로페 크루즈)를 불러내 철 없는 밀회를 즐기다, 아내 루이사(마리온 꼬띨라르)에게 딱 걸리고 만다. 이 와중에 새영화의 주연으로 낙점된 여배우 클라우디아(니콜 키드먼)가 촬영장에게 도착하고 그때까지 대사 한줄 건져내지 못한 귀도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다.
귀도의 상황은 정숙한 아내와 농염한 애인을 동시에 갖고 싶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대변한다. 영화는 귀도의 좌충우돌하는 삶 속에서 종종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고뇌를 만들어낸 근원적 결핍을 엿보도록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어가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욕정이 빚은 덫이며, 창작자가 처해 있는 보편적 아이러니를 역설한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동력에 의해 달려온 이 예술가는, 결국 그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로 전락하고 난 뒤에야 절규한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쳐 놨어!”
이미 <시카고>로 뮤지컬 대가의 반열에 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