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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의 흥행세가 그야말로, 대쪽 갈라지는 모양새다. 모처럼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는 겨울철 대박 영화에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벌써 4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인터넷을 통해 감지되는 관객들의 반응도 대체로 찬사 일색이다.

<
아바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 주요 블로그들을 돌아다녀봤는데, 일부 블로그에서 꽤 흥미로운, 비판적 시각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가 개봉 전부터 워낙 많은 기대감을 품게 한 탓에, 상대적인 실망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으나, 몇몇 관점에 대해선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졌다
.

일단 영화가 구현하고 있는 시각적 성취에 대해선 대개가 동의하는 분위기니 접어두겠다. 이 포스트는 영화 <아바타>가 담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만 논의의 초점을 국한하려고 한다
.

우선, 나는 <아바타>와 관련해 이 블로그와 네이버 영화평란에 다음과 같은 단평을 실은 바 있다

"영화 <아바타> 2시간 42분의 러닝 타임 내내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시각 혁명의 현장 자체이며, 분별력 있는 현실 인식을 담아낸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극이다. <아바타>는 자본과, 기술, 재능이 가장 행복하게 만난 사례이자 영화사의 기원을 바꾼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분별력 있는 현실 인식이라 말한 것은, '판도라와 그 토착민 나비족' '판도라를 침공하는 지구인'의 대결, 또는 갈등 구도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 상징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Cinema Blues N님이 '아바타 단평'이라는 포스트에서 너무나 통찰적으로 서술해 놓았으니 한 대목을 여기 옮기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까 한다.

"<
아바타>는 인류가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침략과 전쟁을 자행했던 이른바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혹독하게 비판하며 자연 속에서의 공존을 강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나는 이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아마도 많은 평자들도 그러한 것 같다. 다만, "문명화와 근대화의 이름으로 침략과 전쟁을 자행"했던 '주체'와 관련해 조금 더 첨언하자면, 나는 그것을 '서구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판도라는 서부 개척기의 아메리칸 인디언일 수도, 베트남일 수도,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일 수도 있을 것이며, 제국주의 다툼 속에서 유린 당해 아직까지도 기아와 분쟁에 휘말려 있는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친미 군부 독재에 시달리던 남아메리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판도라는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 야심에 의해 타자화된 모든 대상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아바타>는 자본/군사/근대화/문명과 소통/교감/자연/사랑의 이항대립을 통해 역사적 성찰과 환경주의를 한 그릇에 퍼 담는 야심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문명화/근대화의 이면에 에너지와 자원, 개발 이권을 향한 자본과 국가(군대)의 결탁, 과학의 미필적 동조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엔 첨단 과학, 또 한편으로는 해병대의 간접 지원을 받으며, 에너지 체취에 혈안이 돼 있는 거대 기업을 설정한 <아바타>는 제국주의가 작동한 메커니즘을 판도라라는 가상 공간을 통해 그대로 재연해 보이고 있다
.

시야를 좀더 좁히더라도, <아바타>는 최근 미국의 외교 노선에 대한 더욱 노골적이고도 직설적인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판도라 '침공'에 앞서 해병대원들을 독려하는 쿼리치 대령의 이 한마디는 꽤나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We will fight terror with terror!"

영화는 이를 "우리는 그들(나비족)에게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말 그대로 "테러에는 테러로 맞설 것이다"라는 뜻이다. 뭔가 느낌이 확 와 닿지 않은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은, 지난 정권기 미국식 일방주의의 핵심을 이 대사 한마디로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셈이다.

다른 주요 영화관련 블로거들도 대개들 이런 해석의 틀로 <아바타>를 논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물론 해석이 대동소이하다고 관점이 같은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나의 관점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다
.

우선, 이 영화의 메시지와 극 전개 방식이 별반 새로울 게 없다는 시각이다.

블로그 '영화진흥공화국' 이규훈 님의 지적은 이렇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매우 풀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풀 수가 없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화면 하나하나가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며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하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을 다루고있는 것이다."(중략) "이미 많은 영화와 도큐멘터리가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객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했고, 많은 관객들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분노하고 고뇌하다가 마땅한 답이 없음에 안타까이 답답해했던 문제를 이런 오락영화에서 다시 들고 나와서는 어설픈 결말로 허탈하게 마무리 짓는 건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아바타>가 담고 있는 꽤 중층적인 해석의 결을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개념화하는 데 선뜻 수긍할 수 없는 것 말고도, 새롭지 않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많이 다뤄져온 것이라 해도,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나는 그것을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문제에 "공감하고 분노하고 고뇌하다가 마땅한 답이 없음에 안타까이 답답해" 하는 관객들이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반대의 생각, "근대화는 (그것이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이식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밥과 풍요를 가져다 주었으며, 인간의 탐욕은 필요악이며 자본은 친절하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사한 색감"과 "반짝 반짝 빛나기까지 하는" 오락영화가 이러한 주제를 담는 것을 역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평자의 인식 안에서 주제의 진중함과 오락영화의 가벼움이라는 고정관념 간의 분열이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논점은, 일부 문화 엘리트들에게만 새롭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자신에게 주어진 표현의 틀을 활용해 얼마나 새롭고도 참신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바타>는 시각 혁명이라는 '감각적 미끼'를 최대치로 활용해 '올바름'이라는 지성적 메시지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 멋지지 않은가! 그토록 한심무쌍했던 할리우드 오락영화 안에 드디어 지성이 녹아든 것이다!

둘째, 역사를 반성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역시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견해다
.
블로그' 달콤한 인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갇힌 한줌의 인디언 부족들이 백인들의 온정에 감사하며 살아가듯, 나비족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전향한 지구인의 손길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멸망할 뻔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역시 반성을 가장한 백인들의 영웅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 한계를 거대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3D 영상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다."


<
아바타> "반성을 가장한 백인들의 영웅놀음"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끝내 동조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비 족에 침투한 아바타가 백인이라는 이유가, 영화의 메시지가 무의미다하고 치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어느 페미니스트가, 전근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보며 여성을 왜 저따위로 종속적으로 그렸냐고 비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지나치게 경직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적 장치를 무시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는 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아바타>에선 인종간 대립이 아니라 문명간 충돌이 주요 플롯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주인공의 인종이 하필 백인이라는 것을 끄집어내 이것을 한계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정치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시점'이다.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라고도 볼 수 있는 제이크는, 지배자의 시선으로 출발했다가, 점점 더 나비 족에 교화되며 끝내 그들의 편, 자연의 편에 선다. 그리고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시점이 이동한다. 제이크의 시점은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의 시점이 되며, 관객들 역시 그들의 시점에서 저 끔찍한 판도라 공습 장면을 공포스럽게 목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간과한 채 <아바타>를 백인의 영웅놀음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평자의 인식 속에 쳐놓은 오락영화 또는 백인영화의 울타리 안에 영화를 가둬놓으려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타자화'가 아닐까
.

문화적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한계 안에서도 빛을 발하는, 어떤 미덕을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바타>가 적어도 <트랜스포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오락영화이고, 제임스 카메론은 마이클 베이보다는 백 배 정도 괜찮은 백인이라고 믿는다.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노암 촘스키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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