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는 내게 왜 이별을 말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고 잘 지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남남이 되는 것.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30분전까지만 해도 이별을 몰랐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닭살멘트를 주고 받다가도 말이죠.

두 사람이 만납니다. 처음에 보통은 한 쪽이 더 적극적이죠. 그러다 어느새 ‘연인’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가까워져 버립니다. 그리고 잘~~지냅니다. 뭐, 어쩌면 모르는 사이 누군가는 상대방에게 이런 저런 실수를 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쪽은 혼자 맘 상하고요. 그래도 적어도 겉으론, 둘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어느 한 쪽이 어느 날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선포해 버립니다.

저는 이런 식의 이별을 당한 이에게 보통 ‘희망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 버립니다. ‘엊그제만 해도 좋았는데’ ‘오늘 아침까지도!’‘그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내일이라도 다시 다정하게 대해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건 위안입니다. 차라리 평소 때 각 세우면서 싸우던 커플은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너무 잘 지내던 사이에서...특히 남자 쪽에서(그것도 조용하고 다정했던 남자) 이런 말이 나온다면. 일찍 희망을 버리는 게 좋다고요. 아무리 난리굿을 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냉혹하게 충고합니다.

흔히 이런 식으로 비유해 줍니다. 아주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그곳엔 배추도 자라고 사과도 주렁주렁 달렸죠. 한 번 홍수도 화재도 나지 않던 그곳에...그런데, 어느 날 뻥! 핵이 터져 버립니다. ‘체르노빌 사태’ 아시죠? 마치 그곳 처럼요. 어제까지 아무리 비옥한 땅인들, 그게 중요한가요? 핵으로 오염된 그 토양엔, 당분간, 아주 긴 시간동안, 어쩌면 영원히....배추고 사과고 고추고 열리지 않을 겁니다. 어제까지 다정했던 연인들의 갑작스런 이별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서 굳이, 그 사람이 왜 나에게 이별을 선포했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알아봤자 그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 괴롭기만 하다, 막장, 끝장이라고요. 그에게 아무리 다그쳐도 ‘이별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겁니다. 그냥 아름다운 추억 한 조각으로 남겨 두라고요. 그게..속 편합니다.

전 정말 4차원인가봐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요. ‘인생은 아름다워’가 어떤 영화죠? 파시즘에 짓밟힌 수용소. 그곳에서 꽃처럼 피어난 아버지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영화 아닙니까? 인류애적인 생각을 해야 할 마당에 저는 시시콜콜한 이별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유치한가요. 용서해 주세요. 근데 뭐, 이렇게 영화 보는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거죠.


1930년대. 유태인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운명 같은 여인, 도라를 만납니다. 약혼자가 있었지만 한눈에 ‘꽂힌’ 그는 함께 ‘야반도주’를 해 버립니다. 그리고 보석 같은 아들 조슈아를 얻죠.

언젠간 우리에게도 그렇게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한눈에 반한 것까진 아니어도, ‘아, 정말 인연을 만났나봐.’ 두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옵니다. 매일 매일을 봐도 보고 싶습니다.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 문득 문득 날아오는 그의 달콤한 문자. 아. 행복합니다.

하지만 행복한 날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귀도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귀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도, 사랑하는 아들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최악입니다. 아마 저라면, ‘죽이기도 전에’ 겁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을’ 겁니다.

어쩌면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먼저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서로 얼굴 바라보며 히히덕대지만, 이 시간도 끝날 거라는 것을. 가벼운 바람둥이들 얘기 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진실한 만남으로 시작했어도 둘 중에 한명은 먼저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운명처럼 느꼈던 그, 혹은 그녀와 내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그만 만날까, 더 참아볼까 소심한 사람이라면 말도 못하고 끙끙, 고민도 많이 하겠죠. 나이 들어 만나는 사람들은 더 그러합니다.

절망적인 순간. 귀도는 아들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신나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끝까지 들키지 않는 사람이 1등상인 탱크를 받게 될 거라고....귀도는 늘 웃었지만, 아마 하루 하루 속은 타들어 갔을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에겐 신나는 놀이였겠지만요.

둘 중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 사람. 어쩌면 그는 상대방에게 아무 티도 안 낼지도 모릅니다. 닭살멘트 따위를 평소처럼 보낼지도 몰라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겁니다. 다가올 이별 따위.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이죠.


‘인생은 아름다워’의 결말은 이제 다들 아시죠? 귀도는 아들에게 끝까지 ‘비참한 현실’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들이 역사적인 소용돌이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아버지는 ‘웃다가’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어린 아들을 혹시 잃게 된다 해도 공포를 느끼지 않길 바라는 속 깊은 마음 말이죠. 그리고 그는 죽고, 아들은 삽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부자의 정과, 스쳐지나가는 남녀간의 연정을 비교하는 건, 그래요. 저도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우리 이별이 조금 덜 아팠던 것이..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꼭 제 얘기는 아닙니다. 제 주변엔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지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아까도 말씀드렸듯 바람둥이들 얘기가 아닙니다.

전쟁통이라는 비극적인 상황도 ‘신나는 놀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극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슬프고 아름다운 거 아닐까요. 진짜 전쟁을 모르는 우리 세대의 인생에도 가끔 전쟁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어쩌면 당사자 입장에선 2차 대전보다 더 큰 사건처럼 느껴질 지도)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별 때문에, 노력했지만 잘 안 된 시험 때문에, 아니면 집안이 망해서, 가족이 죽어서...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내 인생에 왜 이렇게 나쁜 일만 자꾸 일어나는지, 날 사랑했다고 말한 사람은 왜 갑자기 변심했는지 생각하면 땅 속으로만 자꾸 파고드는 것 같고, 괴로우신가요? 저도 사람이니까 그런 때, 한 두 번 아닙니다. 자다가도 팔딱팔딱. 가슴이 벌렁벌렁. 코너에 몰린 기분을 느낄 때, 당연히 있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의 인생이 슬펐지만 아름다웠던 이유를 생각해 볼까요.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들 조슈아는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죽던 그 순간까지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죠. 그냥 신나는 놀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몰라도 될 것까지 너무 알려고 고민하지 맙시다. 인생은 바라보는 대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비록 전쟁보다 더 심한, 죽음의 고통이 느껴진다고 해도. 너무 너무 슬퍼도. 집착하며 그 원인을 파고 들지 맙시다. 그가 갑자기 왜! 이별을 선고했는지. 진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고 답답해 하지 맙시다. 몰라서 행복한 것도 있답니다. 정말 내 성격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그(녀)에게 딴 여자(남자)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었는지, 알면 속 시원할 것 같나요? 속 시원한 건 잠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요. 알면 속만 콕콕 쑤실 뿐이죠.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마찬가집니다. 그냥 귀도 같은 사람이었다고, 믿어 버려요. 좋았던 시간을 좋았던 채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이라고...그리고 나는 그 신나는 놀이를 했던, 해맑은 조슈아라고. 골머리 썩기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한 번 더 웃자고요.

                                                                           posted by 조수빈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