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수난 시대

음악 이야기 2009. 9. 10. 18:49 Posted by cinemAgora

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은 이제 대중문화의 유행 아이콘으로서의 의미 이상을 지닌 단어가 돼가고 있다. 남자 아이돌과 여성 걸그룹이 떼로 몰려 나오는 가운데, 이들이 한국사회가 가진 여러 고질병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방신기가 해묵은 노예 계약 문제를 상기시킨 지 오래가지 않아 지드래곤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2PM의 재범이는 한국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 미국으로 쫓겨가다시피 했다. 스타라는 굳건한 성채 위에 올라서서 대중을 향해 반짝이는 미소와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던 그들이, 순식간에 시궁창 같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그들을 숭앙하는 팬들도 단순히 자신들의 우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위가 아니라 매니지먼트의 잘잘못을 따져 묻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자 한겨레에는 팬들이 게재한 '동방신기는 인격권과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2PM의 팬들은 재범을 돌려달라며 구명 운동에 나서고 있다. 지드래곤의 팬들은 얼마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우회적인 비판에 테러가 이어지자, 스스로 사과글을 올리며 자성을 촉구했다.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

나는 사실, 아이돌과 매니지먼트, 팬덤의 삼각함수 속에는 드러난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해답을 내기 어려운 복잡한 모순성이 존재한다고 믿어 왔다. 아이돌은 매니지먼트에 의해 창출되는 문화 상품이고, 팬들은 그 창출된 상품을 즐긴다. 그러다 추앙의 대상이 됐을 때, 아이돌을 배태한 매니지먼트, 그러니까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SM이나 JYP가 없었다면 동방신기나 2PM도 등장하지 못했을 터인데, 그들을 보위하기 위해 그 창안자를 비난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냐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

그러나 아이돌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임을 깨닫게 해줬다
.  그러니까 팬들은 아이돌과의 자기 동일시를 통해 그들이 속박되고 착취당하는 시스템의 잔혹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은 추앙의 대상에서 팬들이 가진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팬들에게는 그들이 핍박당하는 것이 나의 일부가 핍박당하는 것과 동일한 상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적 직관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논리적 팬심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이때 매니지먼트 권력은 극복해야 할 아버지,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인 부조리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경우가 JYP.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상처 입고 돌아왔을 때 감싸 안아야 마땅하다. 설령 그 아들이 집안 식구들한테 미안하니 스스로 나가겠다했다면 "네 생각을 존중한다"라는 입바른 말 대신 "내가 끝까지 널 신뢰하니 너도 내가 널 지킬 수 있음을 신뢰하라"고 말해야 옳다. 그게 존경 받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이런 이상적 아버지상으로부터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자식 세대에게 자주 부정당해 왔다. 결정적으로 아이돌의 아버지를 자처한 JYP는 이윤을 고려해야 하는, 그리하여 문제가 된 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거해야 하는, 그저 자본가였을 뿐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건, SM도 마찬가지다
.

팬들은 동방신기 사태를 통해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는 데 경악한다. 재범 퇴출 사태를 통해 2PM의 팬들은 한국사회의 껍데기 애국심에 아부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배타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지드래곤의 표절 시비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갖는 속전속결의 시장 논리와 뮤지션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독창성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상기할 계기를 얻었다
.

아이돌이라는 현상은 팬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프리즘이다. 사회가 부조리한데, 매니지먼트 시스템만이 정의로울 수는 없는 이치다. 때문에 작금의 잇단 곤욕과 논란들은 그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라는 일상 속에서 세상을 감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진보를 향한 진통인 셈이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