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해피포인트-입영통지서편’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며 2009년 최악의 광고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7월, 이번에는 ‘맥스웰하우스-복학안하면 안되냐’ 가 도마에 올랐다. 휴학 중인-군대에 간 것으로 짐작되는-남자친구에게 복학을 미루거나, 적어도 자신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말라는 이 광고는, 여러 면에서 해피포인트 광고를 닮았다. 광고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우선시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군대에 가야하는 동기의 현재 심정이 어떠한지, 학교를 잠시 떠난 남자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따위에 관심 없는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상황만 우선시한다.
광고가 공개되었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여성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군대에 다녀올 일 없는 여성들의 시각에서 나옴직한 광고라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의 연속선상에는 드라마 [트리플]의 한계가 놓여 있다. 문제는 군대를 다녀오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타인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방점을 찍는 것이 옳다.
드라마 [트리플]에서 주인공은 모두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청춘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으니 드라마가 아름다워야 정석인데, 이 드라마는 아름답지가 않다. 그 사랑이 지극히 이기적인 탓이다. 남편과의 화해를 바라는 수인(이하나)의 마음을 읽지 않는 현태(윤계상)나, 마음을 열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하는 활(이정재)을 이해하기엔 자신의 감정이 너무 큰 하루(민효린)도, 모두 철없는 유치원생들의 투정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스킨십이 반복된다.
강제로 행해지는 키스장면이나,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랑한다고 외치는 젊음을 보다보면 불편함을 넘어 분노의 감정이 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가해자도 성립되지 않는다) 너로 인해 내가 곤란해졌다며 화를 내거나, 이것은 엄연한 성희롱일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타이르는 사람이 없다. 결국 시청자는 그들의 관계에 개입할 수 없는 제 3자가 되어, ‘피해자가 피해가 없다고 하니 끼어들어 화 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아름다운 청춘들은 무엇을 해도 서로 용서가 되는가보다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했다. 어릴 땐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어떻게든 이를 실천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누기 쉬운 기쁨과 달리, 슬픔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그 요령을 알지 못해 늘 힘이 든다. 슬픔을 나누는 기술에 대하여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일까? 슬퍼하는 사람을 웃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지, 그 사람과 함께 울어야 하는지,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는데 뭘 그런 일로 슬퍼하냐며 다그쳐야 옳은지 답을 찾지 못해 망설이기만 한 경험. 당신도 있지 않은가?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아, 그 사람에게 온전히 맞춰 주는 것이 사랑인지 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면 누구보다 먼저 이를 타이르는 것이 사랑인지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사랑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늘 힘이 드는 것이다.
청춘은 자신의 감정에 서투른 시기이다. 그러나 그 서투름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설령 파악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기에 방황하는 미숙함에 더 가깝다.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고, 타인을 헤아리는 방법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 ‘미운 일곱살’에 더 가깝다. 드라마와 광고는 퇴행해버린 청춘의 단면을 담아낸다. 그 안에는 입영통지서를 받은 친구보다, 그런 친구에게 깜짝 파티를 열어줄 생각을 해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나날이 치솟는 대학등록금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복학해야 하는 친구보다, 그 친구를 만나면 껄끄러울 수 있으니 늦게 복학하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언제부터 청춘이 이렇게 이기적이었던가. 이들에게 화를 내야 할 건 군필자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늙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