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배우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애경's 3M+1W 2009. 5. 18. 11:3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4월 코엑스에서 열렸던 서울오픈아트페어. 방문객이 몰렸으며 전년 대비 약 15%의 매출이 증가했고 4년 만에 처음으로 인터넷이 다운되는 ‘이변’이 연출키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유는 김혜수, 심은하, 조영남 등이 참여한 스타 특별전 덕분. 행사가 끝난 이후, 김혜수의 표현주의 작품 <레이닝 어게인>이 5백만 원에 팔린 사실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 작품 판매액 중 절반은 영동세브란스병원 근육병 센터를 통해 선천성 근육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에게 지원됐다고 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이미지 관리였다. 이를 통해 김혜수는 ‘관록 있는 똑똑한 여배우’를 넘어 ‘선행을 하는 아티스트’로까지 자리매김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그림을 그리는 스타들이 꽤 된다.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 입장에서, 노출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 중 그림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붓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또한 ‘미술은 난해하다’는 인식과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미술품의 가격 덕에, 미술은 상대적으로 ‘고급’한 영역의 문화로 분류되며 진입장벽 역시 높다. 때문인지 ‘소비’되는 이미지를 우려하는 스타들에게 있어 미술이라는 장르의 높은 문화적 지위-말하자면 ‘아티스트’라는 칭호-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요소가 된다. 송일국, 이지아, 김민선, 윤은혜, 구혜선 등의 스타들도 그림을 그린다. 이들의 작품은, 그들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사소하게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원한다고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또한 미술적 재능이다. 그런 면에서 하정우의 ‘작품’은 꽤나 놀라운 ‘발견’이었다.아트페어에 출품돼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작품인 김혜수의 ‘DAZED & CONFUSED’를 잡지에 게재해 주목받은 바 있던 패션컬처 매거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는 6월호를 통해 하정우의 그림 10점을 ‘독점’ 공개했다.

painting by Jung-woo Ha




5월 말 개봉 예정작들인 <보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 편의 영화 그리고 하반기 한국영화 기대작인 <국가대표> 크랭크 업을 마친 하정우는, 그간 영화 작업을 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담당 기자가 하정우로부터 건네받아 온 CD를 처음 열었을 때, 면면이 다른 10점의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한 사람이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에 담당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본 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던 건 “작품을 할 때마다 맡았던 캐릭터의 이미지 그리고 당시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었다”라는 하정우의 설명 덕분이었다. 그런 뒤 다시 ‘작품’을 보니,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았다. 자기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전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비할 수 없겠으나,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그 다양한 내면을 반영하여 표현하는 이런 작품들은 결과물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어떤 ‘명작’과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하정우는 “아직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따라하는 습작의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습작 덕분에, 우리는 평소 호감을 지녔던 배우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painting by Jung-woo Ha


이번 인터뷰가 흥미로웠던 건, 영화와 연기를 대하는 그의 진지함 외에 한없이 가볍고 사소한 그의 일상과 단편적인 사고까지 엿볼 수 있어서였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모든 작품의 대본을 다 모아두었다는 것, 그 대본들마다 ‘흐트러지는 자신을 경계하는 주문’을 적어두었다는 것, 한 때는 라이터를 엄청나게 모았고 그 라이터에 그림을 그려 3천원에 팔아볼까 생각하기도 했다는 것, 지인들 그리고 풍경을 ‘별 볼 일 없는 사진솜씨’에도 불구하고 꼭 필름으로 기록하는 취미가 있다는 것, 요즘은 온갖 커피숍들의 커피잔을 모으고 있다는 것, 그를 도와주는 매니지먼트 실장이 실은 카메라를 든 그의 단골 피사체이며 ‘성격파 영화배우’처럼 생겼다는 것, 그 매니지먼트 실장의 꿈이 실은 ‘배우’라는 것, 최근 기사화되기도 했던 여자친구-모델 구은애-와 가끔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자 친구가 가끔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발바닥에 물감을 칠해달라’ 한 뒤 캔버스에 발자국을 찍는 ‘아트’를 한다는 것 등등... 패션 브랜드는 뭐가 좋고 뷰티 제품은 뭘 쓴다는 둥,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고 재충전을 위해선 뭘 한다는 둥 누구와 연애를 하네 마네 어디를 고쳤네 안고쳤네 등의 신변잡기도 뭐 나름의 미덕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한 배우의 취향과 아카이브를 엿볼 수 있는 기사도 그럭저럭 신선하지 않나 싶다.

photo by suk-mu Yoon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런 ‘근사한’ 인터뷰를 가져 온 기자가, 이 달을 마지막으로 잡지계에서의 은퇴를 선언했다. <프리미어>와 <엘르> 시절을 함께 하며 쭉 함께 일했던 아끼는 후배인데, 그 어떤 기자들보다 더 ‘기자’적인 재능을 가진 친군데, 이렇게 보내야 하니 아쉽고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하정우의 인터뷰가 조금 더 특별했던 건, 뭐 남들에겐 상관없는 일이겠으나, 그녀의 마지막 ‘옥고’였기 때문이다. 하정우의 이번 기사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숙명’이라는 이름 석 자도 함께 기억되기를 소심하게 바래본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