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의 곽재용 감독이 일본에서 영화 한편을 완성해 들고 왔다. 판타지 멜로 <싸이보그 그녀>는 일본 배우와 스탭들에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쥔 특이한 사례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아시아권 공동제작과 국가간 문화교류의 또 다른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곽재용 감독을 만나 친정 개봉을 앞둔 속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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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김선태

 

<싸이보그 그녀>는 한국 감독이 일본에서 연출을 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산업적, 문화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몰라도 그런 측면이 잘 부각이 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그냥 <엽기적인 그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사실 일본에서 이런 정서를 집어 넣는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나로선 일본에서 한국 감독이 와서 영화를 왜 찍느냐, 찍는다면 뭐가 달라야 하느냐, 뭔가 내 정서가 들어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 쪽에서는 예민의 노래가 삽입된 것도 어려워했다. 일본 영화에 한국 음악이 나오는 걸 두려워하더라. 그래도 정서적인 부분을 밀고 나간 것인데, 그런 데 대해 너무 의미 부여를 안 해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름 애국하는 기분으로 한 건데 못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스타 중심의 한류보다 컨텐츠 교류라는 측면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영화에 한국 배우가 나간다 하면 일본영화에 묻히는 거지만 감독이 나가면 그 감독의 생각과 정서가 들어가게 된다. 영화를 통해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고, 그런 것이 진짜 한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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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영화 속에 한국적인 정서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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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자마자 한국말이 나온다. 폭탄주도 그렇고그리고 옥탑방! 일본에는 옥탑방이 없다. (술 취해 토하는 사람) 등 두들겨 주는 것도 일본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일본 사람들은 등을 문질러 준다더라.

 

그런 설정이 일본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던가?

옥탑방 설정 같은 경우엔 (일본 개봉시) 무대 인사 다닐 때마다 한국적 정서라고 설명해 줬다. 할머니가 손주한테 학교에서 안 혼났니?” 라고 말하는 대사는 일본에서 없다고 해서 처음엔 없애라고 그러더라. (남녀주인공이 남자의 고향 마을로 시간여행을 가는)시골 장면도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정서를 집어 넣은 건데 없애자는 얘기가 있었다. 제작비 때문에도 그랬고. 끝까지 살리느라 노력을 많이 했다.

 

어떻게 설득했나?

처음엔 다 오케이였다. 그런데 제작비가 부족하다 보니까 제일 먼저 한국적인 정서부터 빼자고 한 거다. 일본어판으로 나온 만화에선 시골 장면은 빠졌는데, 그건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만큼은 그 장면 지키려고 제작자하고 싸움도 많이 했다. 내가 운이 없는 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한국에서 별로 안 좋다 보니까, 한국에서 흥행하는 영화를 한편 만들고 가자,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준비 기간만 3년이 흘러 버렸다. 처음엔 도호 영화사가 투자와 배급을 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발을 빼버렸다. 그 바람에 제작비가 10억 원 정도 줄어 버렸다. 결국엔 내가 시나리오를 바꾸고 후반부에 설정된 지진 장면을 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일본쪽 제작위원회가 지진 장면이 빠지면 제작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일본 시스템은 먼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제작위원회가 영화가 다 완성된 뒤에야 돈을 준다. 제작비 오버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래서 다시 지진을 넣어야 하는데 지진이 나오게 되면 제작비가 부족해 지니까 대신 다른 장면들을 들어내야 했다. 제일 먼저 사이보그 그녀가 야쿠자들하고 100 1로 싸우는 장면을 없앴다. 아주 상업적인 장면이지. 모션 콘트롤 카메라를 써서 거의 열흘 정도 찍어야 하는 신이었는데 제작비 때문에 없앴다. CG 분량도 줄였다. 그녀의 눈에서 광선 나가는 신도 머리로 들이 받는 장면으로 바꾸고, 케이크집 주인이 그녀를 뒤따라오다가 맨홀에 빠지는 장면도 원래 CG 장면인데 대신 쌍둥이를 불러다가 동생이 쫓아오고 형은 밑에 들어가 있고 하는 식으로 찍었다. 그런 식으로 줄였는데 그래도 제작비가 부족하더라. 결국 시골 장면을 빼자, 하는 얘기가 나왔고 나는 뺄 수 없다, 해서 엄청난 신경전을 벌였다. 일본에서는 감독이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는 하는데, 결국 어딜 가든지 고집 부리면 이길 수 있다.

 

일본 제작자 입장에서는 한국 감독을 데려와서 영화를 찍는 게 굉장한 모험이었을텐데.

야마모토 마타이치로 프로듀서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하고도 같이 일을 했고, 폴 슈레이더가 연출하고 일본 배우들이 출연한 <미시마>라는 영화도 제작한 적이 있다. 일본에선 약간 이단아적인 프로듀서인 거지. 내 영화 <클래식>을 정말 좋아했다. 정서적으로 통한 점이 있었다. 당시 한류 열풍이 불었고,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도 일본에서 잘 되고 해서 분위기가 괜찮았다. 2003년에 시작된 기획이니 꽤 오래 걸렸지만 내가 한국에서 한 작품 만들고 가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 한 작품이 <무림여대생>이었지?

한국에서 실패했지. 처절하게.(웃음) 극장수는 2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예매가 안 되는 거야. 지금 또 그런 상황이 될까 봐 걱정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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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과정에서 일본 배우나 스탭들과의 의사소통에 장애는 없었나?

사실 의사소통은 큰 문제가 아니다. 말보다 감정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배우들에게 예민의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줘서 계속 듣게 하면서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하게 하고, 같이 밥도 자주 먹고 그랬다. 배우들한테 한국말도 가르치고, 나도 일본말 배우고 그랬다. 배우들은 액션으로 한번 보여주면 금방 그 느낌을 안다. 한국 감독이라서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었다. 한국감독한테 지면 안된다 하는 경쟁심도 있고 해서 스탭들은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해주려고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 촬영 감독도 너무 잘 따라줬다. 나중에 정들어서 촬영 끝나고 같이 울고 껴안고 그랬다. 여배우(아야세 하루카)도 촬영하다가 코가 다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안 아프다그러더라. 나중에 물어 보니까 한국에서 온 감독이 일본 여배우가 약하다고 할까 봐 그랬다더군. 나로선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신경이 덜 쓰였다. 한국 스탭들은 거의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데 일본 스탭들은 장인이 되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감독이 이런 정서를 원한다”고 하면 스탭들이 그게 무슨 의미인데요?” 하고 물어 본다. 의미는 무슨! 그래서 어쩔 때는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일부러 만들어 제시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 스탭들은 감독이 원하는 걸 지켜보고 수행해 준다. 또 스케일이 이렇게 큼에도 불구하고 두 달 25일만에 빨리 찍을 수 있었던 건 미믹이라는 모션 콘트롤 카메라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가 카메라를 제어하는 시스템인데 30분이면 세팅이 다 끝난다.

 

일본 프로덕션 시스템이 너무 규격화돼 있어서 좀 갑갑해 하는 감독들도 있던데?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나한테 왜 일본에 왔냐고 그러더라. “일본에선 감독 하기 힘들텐데하면서. 하지만 8억 엔 정도 들어간 대작이다 보니까 오히려 많이들 따라줬다. 서로가 서로의 방식을 잘 따라준 거지. 서로 배우는 자세로 한 것 같다. 일본 시스템은 회의가 많고, 나중에 뭘 바꾸려면 또 회의를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한국식으로 많이 했다.

 

배우들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나?

원래 한국에서 잘 알려진 배우를 쓰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여배우는 처음에 아오이 유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나기도 했는데 상당히 좋아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아오이 유우는 저예산 영화 배우였기 때문에 대작에 어울리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코유키나 하마사키 아유미같은 가수까지 많은 여배우들을 추천 받았다. 아야세 하루카는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알고 있었는데, 짧은 머리를 하고 분장을 하니까 사이보그적인 느낌도 나고 괜찮더라. 한국에 불러서 리딩을 시켜봤더니 굉장히 잘하더라. 일본 배우들은 생긴 걸로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아야세 하루카는 나름대로 배역과 잘 어울리던데? 요즘 일본에서 상종가더라.

최근 <가슴 배구>라는 영화에 주연을 맡았던데, DVD를 보내줬다. 얼마 전 NHK 프로그램에 나와서 내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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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제작 과정에 어떤 기여를 했나?
한국판 녹음하고 음악 작업할 때 한국에서 좀 했다. 많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한국에서 작업했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공동제작이라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한국쪽에서 제작비 일부를 투자했다. 제작 과정의 완전한 합작은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다. 사운드 하나를 한국에서도 하더라도 데이터를 한국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위험성도 있고 그게 다 돈이다. 그렇다고 한국 스탭들을 일본으로 데려와서 작업하려면 하다 못해 방값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로 돈이 들어간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일본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코드를 고민했을 것 같은데.

참 어려운 문제다. 고민을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도 아니다. 언어가 일본어다 보니까 중국에서 개봉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이 일본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등등. 앞으로는 중국하고도 합작을 해서 아예 중국어로 녹음을 할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엔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일본하고 한국만 생각했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과 일본은 정서적으로 비슷한 부분도 있고.

 

스스로 이번 영화에 만족하나?

다른 영화에 비해서 만족스러운 편이다. 후회가 덜 되는 거지. 부족한 부분이 물론 있지만 상업영화가 가진 한계일 수도 있다. 제작비 한계 내에서 기한 내에 찍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의 정서가 많이 묻어나던데?

일본에서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정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내가 가진 정서를 얼마나 이 영화에 담아 내느냐였다. 그것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서 또 영화를 찍을 생각인가?

이 작품이 잘되면 좀더 쉽게 되겠지만 한국에서 잘 안되면 어려울 수도 있다. 아야세 하루카도 함께 한 작품 더 하고 싶어한다. 일본에서 엄청 터지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이 정도 규모의 상업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일본에서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것, 어색하지 않았나?

이사를 가도 하루 이틀 지나면 적응이 되잖나. 일이 바쁘다 보니까 이런 저런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갔다 와 보니까 영화가 만들어졌고, 개봉할 시점이 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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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김선태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영화로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영화라기보다 일본영화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과연 관객들도 한국영화로 인정하느냐는 또 다른 부분이다. 한국영화로 봐달라고 한다고 해서 통할 문제도 아니니까. 막상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일본영화라기보다는 한국영화라는 얘기들 많이 한다. 어떻게 보면 희한한 영화지. 잘못하면 일본에서는 한국영화고, 한국에선 일본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좀 따뜻하게 품어줬으면 좋겠다. 영국에서 박지성이 뛰는 축구 게임을 열광해서 보는 것처럼 한국 감독이 일본에 가서 이런 큰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주고 격려를 좀 해준다면 나중에 더 잘하지 않을까 싶다.

 
관객들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던데.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가서 관객들이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도 기존 일본 영화들이 해오던 배급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엄청난 한계다. 만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했다면 좀 크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일본보다 늦게 개봉하다 보니까

 

일본에서는 지난해 여름에 개봉했는데 성적이 나쁘진 않았다고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GAGA’에서 배급한 데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영화라는 걸 감안한다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DVD 판매 순위도 2008년도 1위였다. 일본은 홍보비도 비싸지만 부가 판권 시장이 튼튼하다 보니까 처음부터 2차 판권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도 하고 홍보도 한다.

 

영화가 가진 대중적 흡인력은 있다고 보는데, 흥행에 불리한 외적인 변수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요즘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너무 많다. 대작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게다가 배급 좀 잘 해달라고 하면 그냥 일본영화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그런 게 아쉽다. 적어도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보다는 잘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목표도 꽤 멀더라.

 

다음엔 중화권 영화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중화권도 재미 있을 것 같은데 말들이 많고 힘들다. 제약이 너무 많다. 귀신도 안되고 정치적인 것도 안되고 하니까. 그쪽에서도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는 싶어하는데 감독이 없다. 개방된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자유분방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두 얼굴의 여친>을 중국에서 영화로 만든다고 감독을 좀 맡아 달라는 요청이 오긴 했는데, 한국에서 다른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할 수는 없고 해서 기획과 각본에는 참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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