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와 '오이시맨'

영화 이야기 2009. 2. 14. 16:21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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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작은 영화'들에 대해 말할 때는 조심스러워 진다. 설령 영화에 불만이 있다 할지라도 신랄하기란 쉽지 않다. 안그래도 힘겹게 만들었을 영화에 자칫 재를 뿌리는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흥행 돌풍을 넘어 태풍이 되고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영화의 흥행 선전이 한국 독립영화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실로 대단할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영민한 기획과 헝그리 정신으로 빚어낸 장인적 촬영, 멀티플렉스를 공략하며 뒤를 받친 배급의 뚝심을 폄훼할 근거는 없다. 흥행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허나, 나는 <워낭소리>가 소띠 해를 맞는 관객들에게 시의적절한 맞춤형 감동을 '서비스'하기 위해 상황과 장면을 편의적으로 연출한 흔적이 엿보여서 보는 내내 찜찜했다. 그러한 흔적이 적어도 다큐멘터리라면 적절한 사실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내 믿음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TV 휴먼 다큐가 자주 저지르는 과잉 연출의 우를 이 영화도 범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됐다. 그 의심이 <워낭소리>의 진심을 흔쾌히 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됐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소재와 영상이었지만, 의도된 스토리텔링에 적절히 복무하는 장면들만을 취사선택한 듯한, 말하자면 농촌적 소재의 도시적 몽타주가 끝내 불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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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을 앞둔 <오이시맨> 역시, 총 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니 이른바 작은 영화 계열에 속해 있는 작품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흔쾌히 즐길 수 없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상당 분량을 홋카이도 로케이션으로 촬영했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잘 알려진 이케와키 치즈루가 출연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만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존의 청춘 멜로를 뛰어 넘는 '새로움'이나 영화적 경험의 확장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단지 이케와키 치즈루가 참 연기를 앙증 맞게 잘한다는 것 정도?(사실 나는 '오이시맨'을 '맛있는 남자'로 멋대로 해석하고 조금 야한 느낌의 영화이겠거니 짐작했으나, 막상 영화는 야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귀가 고장나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뮤지션 현석(이민기)이 홋카이도로 날아가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거기 붙박고 살아가는 젊은 여성 메구미(이케와키 치즈루)로부터 치유의 에너지를 얻는 과정은 일견 상투적이긴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남자의 상처를 설명하기 위해 관객을 자주 길고 지루한 과거 여행으로 안내하는데, 그것이 남자의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상에 대한 울림 있는 가이드는 되지 못한다. 영화는 뜬금 없이 현석의 추억 속에 등장하는 재영(정유미)의 이야기로 중심을 옮겨 가는가 하면, 가족과 얼음축제에 따라나선 메구미의 일상도 살짝 제시하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주인공은 사실 세 명이라는 얘기가 된다. 헌데 중심 플롯은 현석에게만 집중돼 있으니 균형이 잘 안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유빙의 이미지와 쇄빙선의 소음, 눈보라의 시청각적 상징성 모두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텐데, 인물들이 겉돌고 있으니 소리와 풍광이 더해진 감정의 변증법적 통일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어줍잖은 분석의 틀이 무용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미덕이 있는 영화임에 틀림 없어 보이지만, 나로선 구체적으로 어떤 미덕이 있다고 쉽게 끄집어 제시할 수가 없다. 뭐랄까, 유려한 이야기의 힘으로 진정성을 과다 노출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와는 반대로, 극영화인 <오이시맨>은 오히려 이야기의 투박함으로 진정성을 과소 노출하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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