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바깥의 일이다. 그것이 상찬이든 극찬이든, 조악한 몇가지 단어로 이 영화를 말하는 것이 사전에 어떤 규정이나 편견을 만들어낼까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뒤 가슴에 어떤 자국을 남길지는 지당하게도 관객들 각자가 지닌 삶의 편린에 따라 천양지차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영화가 안그러겠냐만, 이 영화의 경우엔 좀더 두렵다. 그 두려움은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걸작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기를 원한다. 재미있어서냐고? 영화를 그저 재미 있고 없고로 나누는 무자비한 품평은 이 영화에 대한 모욕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어떻게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자, 특정한 시대를 산 특정한 인물들의 구체적 삶 속에서 놀라운 보편성을 건져 올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10여년 전 아카데미를 경악시켰던 <아메리칸 뷰티>에 대해 강렬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샘 멘데스 감독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 영화에 흔쾌한 신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선적 치부를 잔인할 정도로 냉소적으로 파고 든 바 있는 샘 멘데스는, 1950년대의 중산층 부부를 매개로, 또 한번 매력적인 결혼과 안락한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뒤에서 떨고 있는 실존의 위태로움과 불안감을 들춰 낸다.
일상의 평온함 뒤에 숨은 소외의 굴레,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외부의 위선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편승하는 편리한 자기 기만이 치명적인 폭력으로 전이되는 풍경이 이 영화 속에는 있다. 남의 가정사이니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를 미국판 <사랑과 전쟁>으로 보고 마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별 거 아닌 것들이 개인의 행복을 옭아매고 거대한 상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 어떤 대규모 스펙터클 영화보다 흥미진진하고도 아프게 다가온다. 샘 멘데스는 그 굴곡의 드라마를 단지 드라마로 소비하지 않는 대신, 다층적 시점을 오가며 응시하고 논평함으로써, 끝내 내 가슴에 조용하고도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니 보시라. 기혼여성이라면 무조건 보시라. 기왕이면 남편과 함께. 2월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