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미스 선생과 샤넬 여사

애경's 3M+1W 2009. 1. 25. 01:43 Posted by 비회원


이 달 <데이즈드>는 모험에 가까운 표지 플레이를 했다. 샤방샤방 구매욕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표지에 63세 노인의 비주얼을 떡 하니 올려놓았다는 거. 조금 망설여지도 했으나, 옷가게 파트타임 점원으로 패션계에 입문한 평범한 청년이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그 바이로그라피를 살펴보면, 충분히 오마주를 바쳐도 될 만한 대상이라 판단했다. 여전히 직접 원단을 고르고 디자인을 하며, 그 상품이 진열될 매장의 컨셉트까지 일일이 조율하는 디자이너. 그는 후계자를 고르는 대신, 끊임없는 영감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젊어지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가 즐겨하는 말이 있다.  ‘YOU CAN FIND INSPIRATION IN EVERYTHING’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소년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세상을 향해 열어둔 채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내는 할아버지. 이번 촬영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 준 그의 사무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쌓여있고, 미술 작품이 걸려있고 그 와중에 컬렉터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온갖 소품들이 늘어서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화. 그의 비서는 그와의 첫 대면을 회상한다. “첫 날 긴장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죠.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폴 스미스 경이 토끼 가면을 쓰고 나를 맞이했어요. 너무도 유머러스한 분이셨고, 당시 모든 회사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죠.” 폴 스미스 제품들에 녹아든 위트- 소매단 밑에 스트라이프를 숨겨놓은 셔츠 따위-는 그러니까, 모두 폴 스미스 할아버지의 유머감각이었던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두 대목을 가져오는 것을 끝으로 샤넬 여사에게 패스! 

만약 당신의 인생이 영화화된다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만약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내 친한 친구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아주면 아주 제격일 것 같다. 그 친구는 배역이 주어지면 그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아주 철저한 준비를 하곤 한다. 영화 <라스트모히칸>을 찍을 때, 그는 인디언 역할에 빠져들기 위해 2달 동안 숲 속 통나무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도 했었다. 음 그리고 주제가로 삼고 싶은 노래는 엄청 많은데,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도 밥 딜런의 곡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어떤 브랜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폴 스미스를 위트 있는 브랜드로 기억시키고 싶다. 또한 청년부터 장년 그리고 노년까지도 부담없이 폴 스미스 매장을 들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대학생 손자와 할아버지가 함께 매장에 들르는 그림 말이다. 그리고 난, NICE MAN으로 기억되면 좋지 않을까?


샤넬은, 사실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가 3편이나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기사화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사진을 수급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자서전 비슷한 책을 읽게 됐다. 고아원 출신에서 세기의 디자이너로 거듭난 코코 샤넬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삶을 살다 간 20세기 패션계의 주인공이었다. 끝없는 남성편력을 자랑하면서도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던, 부와 명성을 모두 가졌으나 가장 사랑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죽음으로 잃은 쓸쓸한 여자.


사실 샤넬은 브랜드 그 이상이다. 고귀한 호사, 절제된 섹시함, 궁극의 여성미. 거창한 수식들을 거두고 나면 ‘품위 있고 안락한 여자의 삶’이라는 욕망의 지향점이 바로 샤넬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코코 샤넬은 여자들의 몸을 조이던 코르셋을 던져버리고 바닥까지 끌리던 긴 스커트를 무릎 아래로 잘라버렸으며 남성복 원단으로 여성용 팬츠를 만들었던 여성 해방의 선구자였다. 그녀는 현학적인 철학 한 마디 없이도, 여자들의 몸과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만으로 기존 사회의 편협한 윤리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만큼 영리했다. 그녀는 부와 물질에도 초연했다. 영국 최고의 거부였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값비싼 선물들은 죄다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끝내 그의 청혼을 거절한 이유 또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부자들에게서 풍기는 궁색한 권태가 재미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고백 하나. 얼마 전 이태원 뒷골목 쇼핑에 나섰다가, 샤넬 로고가 떡 하니 박힌 세일 품목-놀라운 가격 2만원에 판매 중인 트위드 재킷-을 하나 구입했다. 패션지 편집장이 ’짝퉁‘ 샤넬을 입고 다니는 것이 이 바닥 상식으로는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겠으나, 그 순간만큼은 ’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 여사조차 생전에 “의상이 거리로 내려오지 않으면 의상이라 할 수 없다”는 강경한 패션 철학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그나저나, 왜 진짜 샤넬 트위드 재킷은, 여전히 선택 받은 소수의 삶을 상징하는 하늘 위의 의상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코코 샤넬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 세 편의 영화가 잉태되었다. 샤넬이라는 옷을 걸치고 가장 먼저 등장하게 될 영화는 샤넬 No.5의 모델이기도 한 오드리 토투 주연의 <Coco Avant Chanel>이다. 동명의 전기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그녀가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이전의 삶과 첫사랑 보이 카펠과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작품으로, 지금 한창 파리에서 촬영 중이다. 게다가 현재 샤넬의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 본인이 직접 영화 속 의상과 액세서리를 재현한다는 소식은 ‘눈이 즐거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다. 두 번째 작품은 야안 쿠넹 감독의 <Chanel and Stravinsky : The secret story>로, 1913년부터 1925년 사이 러시아 출신 망명 지휘자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로 샤넬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작곡에 재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 역시 여주인공은 샤넬의 뮤즈이자 칼 라거펠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안나 무글라리스로, 자타가 공인한 패셔니스타인 그녀와 시대를 초월한 혁신적인 디자이너인 샤넬의 화학작용에 벌써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역은 <007 카지노 로얄>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연기했던 매즈 미켈슨이 맡았는데, 현재까지 공개된 스틸 컷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과 매혹적인 존재감을 맛보기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샤넬을 입을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다른 사람도 아닌 샤넬의 전기 영화에 대해 논하는 중이니 ‘여류’라는 시대착오적인 표현은 생략한다)인 다니엘 톰슨이 연출할 예정이라는 것만 발표되었을 뿐, 아직 아무 것도 공개된 바가 없어 대중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2월호 기사를 참조로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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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넬은 근사하죠 너무너무너무 비싸다는 것만 빼면 ㅎㅎ

    2009.02.0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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