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지인이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은 참 참혹한 것인데 흥미를 돋우는 작품들은 다 전쟁과 관련한 것들이니 우습죠?”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평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을 ‘구경’하고 싶어한다. 거대한 구조적 욕망이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위악성과 이기심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그러므로 가장 문학적이자 영화적인 소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여 <적벽대전>을 미리 본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도 하나 같이 “전쟁신이 볼만 하냐”는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 미리 개봉한 1편이 변죽만 울리고 기껏 팔궤진 하나 재현하고 그친 데 대한 불만들이 적지 않은 터이니, 2편에 대한 관심의 초점도 바로 그 부분에 맞춰져 있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프리뷰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 그 질문에 답한다면, ‘적어도 1편보다는 많이 볼만하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 이야기에서 정작 적벽대전은 빠져 있던 1편이 조조에 맞선 유비-손권 연합군의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2편은 마침내 한 판 붙는 전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오-촉 연합군이 위나라의 대군과 맞붙어야 하는, 그러니까 약자와 강자의 승부만큼 흥미로운 설정이 또 어디겠냔 말이다.
과연 감독 오우삼은 마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고 말하듯 전쟁 스펙터클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에 한껏 부응하려는 욕망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영화 후반 40분간에 걸친 정신 없는 전쟁의 불구덩이. 제갈공명의 남동풍에 힘입은 화공 작전이 펼쳐지고, 수전에 이은 육전, 그리고 공성전까지, 그야말로 숨돌릴 틈 없는 전투의 향연(?)이 이제껏 ‘뭐야~!’ 하며 맥이 빠져 있던 관객들의 느슨해진 긴장감을 바짝 조인다.
그러나 40분 전쟁신의 쾌감을 고양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거꾸로 느릿느릿 걸어온 앞선 1시간 반과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은 1편이라 할 수 있다. 전쟁사 최초의 생화학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조조의 전염병 작전, 조조의 밀사를 역이용한 주유의 이간질 작전, 그리고 안개를 이용한 제갈공명의 화살 수집 작전 등, 한판 격돌을 앞둔 양 진영의 ‘잔머리 굴리기’ 심리전은 묘한 긴장감과 재미를 안겨준다.
어쩌면 그런 대목이야말로 명분과 실리의 구분이 모호한, 전쟁이 갖는 치사한 성격의 진면목일지도 모른다.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난무하는 참호 안의 병사가 제정신으로 조준 사격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파국의 공포를 똑같이 안고 있는 양 진영은 그렇게 몸은 잔뜩 사린 채 잽만 툭툭 던지고 있는 셈이니, 주유와 제갈공명의 알려진 지략을 확인하는 의미 이상으로 전쟁에 대한 페이소스를 안겨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1편에서도 감지했다시피, <적벽대전>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나라 장수 주유(양조위)와, 포스터에는 빠져 있는 조조(장풍의)다.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장수의 딜레마를 표현해낸 양조위의 연기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지만, 단순한 악인으로만 평가될 수 없는 조조의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재현해낸 배우 장풍의의 아우라는 가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불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대규모 전투신에 비하면 막판 칼싸움에서의 디테일한 연출 내공은 확실히 장이모우에 미치지 못한다. 제갈공명 역에 금성무는 여전히 적역 캐스팅은 아닌 듯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