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을 보는 세 가지 시선

늙은소's 다락방 2009. 1. 11. 11:42 Posted by 늙은소

 

고려 말, 원의 간섭을 감내해야 하는 왕(주진모)은 약해진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친위부대인 건룡위를 설치하고, 용모가 준수한 남자들로 이를 구성한다. 건룡위의 총관인 홍림(조인성)은 어려서부터 왕의 총애를 받아왔으며, 여자와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왕과 내연관계를 맺어온 사이이기도 하다. 원의 공주인 왕후(송지효)는 이러한 사실을 짐작하나 입 밖에 내놓아 말하지 않는다. 세 사람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을 수면 아래 감춘 채 평화를 가장한다.

왕의 반원 정책에 반대하는 대신들은 왕에게 후사가 없음을 빌미로 왕과 왕후를 압박하고, 친원 세력인 경원군을 세자로 책봉하려 한다. 왕후를 품을 수 없는 왕은 아들을 얻기 위해 자신의 연인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이기도 한 홍림에게 왕후와의 잠자리를 명하고, 이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1. 구조적 역학관계로 보기
[쌍화점]에서 제기되는 정체성의 혼란은 비단 성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왕은 남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에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국왕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은 훼손되었고, 정치 권력의 정당성마저 확립하지 못한다. 왕후 앞에서 그는 남성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남성이며,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원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절반의 고려인일 뿐이다. 그가 왕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은 자신의 혈통에 있다. 왕족이라는 그의 혈통만이 그가 왕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 그러나 왕은 홍림과 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후사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움으로써 그 정당성마저 스스로 파기하기에 이른다.

왕과 왕후, 홍림은 자신의 내부에 상호 모순된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왕후는 지배국인 원의 공주이며 동시에 피지배국인 고려왕의 아내이다. 그녀는 원나라와 고려,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상호대립물의 완충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녀의 내적 요구는 매 순간 외적 조건과 합치되지 못한 채 좌절되어 왔다. 왕후로(또한 고려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버려야만 하는 것. 홍림의 경우에도 이러한 모순은 존재한다. 그는 왕의 정부이며 왕후에게는 연인이다. 건룡위 총관으로서의 그의 지위는 오로지 왕을 위해 헌신할 것을 명령하나, 그의 욕망은 이 모든 것을 버리도록 종용한다.

왕은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왕위를 획득했고, 왕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호위대를 구성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왕후와 홍림에게 있어서도 왕의 존재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결정지어주는 절대적 근간이 된다. 이들이 그간 유지해 온 평화는 이러한 암묵적 계약관계를 딛고 서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홍림과 왕후 사이에 육체적 욕망이 발아하며 이 역학관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시작한다. 팽팽하게 수평을 유지하던 내부의 모순이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흔들리기 시작하자 세 명의 관계 또한 위태로워지고, 그 결과 세 사람 모두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왕이 홍림을 거세형에 처하는 것은 극단적인 질투의 결과이기도 하나 동시에 왕 자신에 대한 거세이며, 세 사람이 유지해온 거래의 파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2. 애로티시즘의 욕망으로 보기
이 시선이 가장 평이하다. [쌍화점]의 정사장면은 [색,계]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사실 그 비교는 무의미하다.

[색,계]에는 세 번의 정사장면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이 장면들은 각각의 행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처음의 섹스는 가학적인 형태로 출발한다. 이 장관(양조위)은 3년의 시간을 기다리게 한 모든 것에 화를 내듯 막부인(탕웨이)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내버리듯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그러나 세 번째 성행위 장면에 이르면 이들의 관계는 역전된다. 어두운 곳을 두려워하는 이 장관의 얼굴을 베개로 내리누르며 왕 치아즈는 이 장관이 공포에 함몰되도록 유도한다. 이 장관은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용인함으로써 공포를 쾌락의 일부로 수용하고, 자신이 누구에게도 허용치 않은 공간을 그녀에게 허락하는 수동적인 여성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 장관의 심리적 처녀막을 파괴하고 그의 몸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은 오히려 왕 치아즈 자신이다.

[쌍화점]의 정사 장면은 지나치게 순수하여 단조롭기까지 하다. 의무적인 행위가 육체의 쾌락으로, 다시 그것이 연인의 감정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가 현재 수용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의 허용범위가 아직은 여기까지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정도 수위의 정사장면을 이름있는 배우가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극한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는 전제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욕정과 사랑의 우선순위를 논하기 앞서 관객 스스로 '사랑이어야만 한다'는 당위를 강요하고 있는 것는 아닌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3. 구속과 탈주의 이미지로 보기
영화 초반부, 나들이를 나온 왕은 왕후의 목에 걸려 있는 향갑 목걸이를 가리키며 ‘10년 전 향기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음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향갑은 애써 죽여버린 욕망을 의미한다.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향기를 가두고 있는 향갑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왕후가 결혼하며 가져온 향갑은 그녀의 욕망이 아직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단서이다. 홍림이 왕비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물건이며, 왕후가 왕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 물건. 홍림은 향갑을 선물하여 그녀가 아직 여자임을 일깨운다.

향갑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가 새장과 그림이다. 홍림의 배신을 확인할 때 왕은 새장의 문을 닫아 걸고, 이로써 홍림과 왕후 모두를 새장 속에 가두려 한다. 그러나 왕은 동시에 홍림에게 말을 선물하고, 자신과 함께 요동 땅을 달리는 꿈을 꾸었노라 이야기한다. 왕은 홍림과 함께 대륙을 달리는 꿈을 꾸지만 그렇게 달리는 두 사람을 그림 속에 가둠으로써 다시 관계를 구속하는 모순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새를 애써 가두듯 왕의 사랑은 구속과 탈주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군왕이자 동시에 원의 지원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유지하지 못하는 왕권의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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