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3M흥업에 합류한 반가운 분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동안 저희 블로그에 본문글이 무색해질 정도의 멋진 댓글을 달아주시던 '늙은 소' 님을 객원필자로 모셨습니다.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인연 뿐 아니라 온라인 소통망 안에서 만나게 된 좋은 필자를 영입해 팀블로그의 외연과 다양성을 확장해나가자는 취지입니다. 이런 생각에 흔쾌히 공감해주신 늙은 소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소 띠 해에 걸맞게 앞으로 진중하고도 통찰력 있는 생각과 글을 전해주실 늙은 소님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그를 대신해 첫 포스트를 올립니다.
-cinemAgora


도저히 끝나지 않는 만화들이 있다. 작가의 개인적 사정으로 후속편이 나오지 않는 ‘유리가면’은 차라리 포기라도 하겠는데, 끝이 날 듯 하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만화를 보고 있자면 이걸 안보고 말지 싶을 때가 많다. 중학교 3학년생들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빤한 주제를 제법 어여쁘게 그려온 ‘보이(타카코 야마자키)’는, 처음 두 권에서 1학기를 모두 소진해버리더니 이후 15년간 2학기에 머무르는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20분이면 끝날 농구 후반전을 3권에 걸쳐 다룬 슬램덩크도 있으니 말 해 무엇 하랴.


성공했다 싶은 만화를 어떻게든 완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만화가에게 있어 성공작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이며, 이 기회를 통해 집도 장만하고 밀린 보험료도 내주어야 하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무엇이긴 한 모양이다. 제법 성공한 만화가인 아이 야자와조차 ‘나나’를 끝내지 않고 있으며, 원피스가 목적지인지 목표물인지 혹은 그들이 몰래 속옷처럼 착용하고 있는 의상을 말함인지 알 수 없는 ‘원피스’도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20년 가까이 유치원만을 고집하는 짱구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만화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언플러그드 보이’를 단 2권만으로 끝내버린 천계영은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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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끝나지 않는 만화 목록 중 ‘명탐정 코난(아오야마 고쇼)’이 있다.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은 이 만화는 검은 조직의 음모를 파헤치다 독극물에 중독된 명탐정 남도일(신이치)이, 약물 부작용으로 어린아이가 되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도일은 코난이라는 이름의 초등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탐정 유명한(코고로)이 해결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을 대신 처리하는 한편 검은조직의 음모와 맞서 싸우는 중이다. 나는 이 만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탐정 유명한의 아둔함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코난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과정에서 종종 유명한을 활용한다. 마취총으로 그를 기절시킨 다음 유명한의 목소리를 흉내 내 마치 유명한이 직접 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주위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수면마취가 된 당사자 유명한이 그러한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기 확신에 차, 스스로를 사건해결자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유명한과 비슷한 부류의 만화 주인공으로 ‘형사 가제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머리에서는 프로펠러와 우산, 망치가 튀어나오고, 팔과 다리는 용수철이 되어 사정없이 늘어나는 가제트는, 몸의 각 부분을 기계로 대체시키면서까지 영웅이 되기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은 언제나 조카와 강아지의 몫이어서, 가제트는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늘도 지구의 평화를 위해 희생할 궁리만 하고 있다.


유명한과 가제트가 보여주는 긍정적인 태도는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 특유의 어리석음을 담보로 한다. 종종 ‘사실은 가제트나 유명한이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조카가 사건을 대신 해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제트의 정신분열을 상상하거나, 신분을 감춰야 하는 코난을 이해한 유명한이 의도적으로 이를 묵과하고 있다는 억측을 도입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게도 이들의 우매함을 강권한다.


‘명탐정 코난’과 ‘형사 가제트’는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위해, 유명한과 가제트가 계속 어리석은 채 남아있을 것을 강요한다. 사회적 효용가치에 있어 유명한보다 우월한 존재인 코난이 신분을 숨긴 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명한의 아둔함이 필요하고, 이는 가제트의 조카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가치 있는 인재를 위해 그보다 못한 어른이 어리석음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라니. 더불어 그 어리석음을 위로하는 방편이 ‘진실을 모르면 어떠한가. 사건은 해결되었고 당신은 영웅이 되었는데..’인 것인가 싶어 종종 섬뜩해지고 만다.


‘명탐정 코난’이 끝이 보이지 않아 싫은 게 아니다. 나는 이 만화가 불편하다.

늙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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