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일요일, 도봉산에 가다!

별별 이야기 2007. 7. 3. 14: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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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도봉산에 갔었다. 장마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아침이었지만, 대수겠나 싶은 치기가 발동하셨다. 어머님의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미친거다.
그래도 완전히 미치진 않았는지, 유능한 셀파 한 명을 섭외하기에 이른다.
바위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형 도봉산 갑시다"
암벽을 가르쳐준 그 바위선생은 "와이 낫"을 외친다. 어차피 비가 퍼붇는 날씨에 바위는 무리니 왠 쾌냐 싶었을 것이다.

9시 30분, 도봉산 입구 만남의 광장, 공식 명칭 포돌이 쉼터(인 것 같다... --)에서 미친 인간 둘이 도킹했다. 위로가 되는 건, 우리 둘 말고도 꽤 멀쩡해 보이는 미친 인간들이 많이 보였다는 것.
비를 맞으며 하는 산행은 칼로리 소비가 많다나 뭐라나, 탄수화물 비축을 위해 막국수 두 그릇 먹어 주신다. 아울러 건강을 위해 등산한다는 5공 표어같은 편견(!)에 저항코자 담배 한 대 맛나게 빨아주시고. 드디어 도봉산 매표소를 거쳐 첫 목적지 우이암으로 출발.

비온다. 집을 나설 때부터 알았지만, 비 겁나게 온다.
사우나 냉탕에서 물맞는 기분으로 걸었다.
사실 바위선생을 부를 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산행을 통해 단련된 나의 강건한 하체를 보여주리라, 그리하여 한 명의 당당한 산악인으로 대우(!) 받으리라, 이런 기대 말이다. 그러나, 상대를 잘 못 골랐음이 곧 판명되었다.
초장부터 러닝 수준으로 끌고 올라가는 바위 선생의 페이스에 한 시간도 되기 전에 떡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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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의 die hard '마라톤맨'

자존심을 지키고자 죽을 힘을 다해 따라 붙었지만, 헉헉거리는 숨소리에 고갈난 체력은 뽀록나 버리고, 영화 <마라톤 맨>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고문 당하는 더스틴 호프먼 같은 나의 항복 선언, "형 좀 쉬었다가자 쉬었다..."
바위 선생은 숨겨둔 이야기를 꺼낸다. 지난 겨울 내내 빙벽을 타셨고, 최근엔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을 종주로만 뛰셨다는.
이건 마치 존 콜트레인에게 잼 배틀에서 패한 색소포니스트 소니 롤린스가 10년 가까이 은둔 수행 후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재대결을 펼쳤지만, 그 사이에 존 콜트레인은 십취월장(이런 단어가 있나 모르겠다... --)한 기량이었다는, 재즈사의 슬픈 우화같다.
 


승부를 포기하니, 산이 보였다. (그거라도 건져야 하지 않나?)
구름이 잔뜩 몰려든 우이암 정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화과산의 모습이다. 물론 화과산엔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산둥성의 태산이란다) 가 본 적 없지만, 그렇다는 얘기다.
패자의 여유가 익숙해지자 비소리가 실로폰 소리로 들렸다. 게리 버튼이 내한공연에서 들려준 비브라폰 소리와 흡사하다. 자연은 위대한 음악가보다 뛰어나다... (아쭈~)

걷는다. 그냥 걷는다. 그게 좋아서.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물어 온다. 올라갔다 내려올 걸 왜 가냐고? 낸들 알겠나? 세계 최초로 8000m 14좌를 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고작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간다'라는 선사상만 전파했을 뿐인데.
그래도 준비된 대답은 있다. 좀 더 형이하학적인 걸로. "갓난아기 때 절에 맡겨져 평생을 스님으로 산 분에게 고기맛을 설명 할 수 있겠나? 고기맛을 알고 싶으면 고기를 먹고, 산이 알고 싶으면 산에 가봐라" (명답이다...--)

산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장마 시즌 본분에 충실한 빗줄기는 하늘에 빵꾸 난 듯이 그칠줄 모른다. 4시간 쯤 그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하산길이다. 우이동 유원지길로 내려오자 빗방울이 가늘어진다. 얄미운 자식들...
문득 욕심이 생긴 바위선생이 한 마디 던진다. "북한산으로 넘어가자"
엄두가 안난다. 졸렬한 나의 대답. "형, 이건 등산이지 투쟁이 아니라구"
... 아! 비겁, 비굴하다. '비굴은 나의 것'
눈치 없는 바위선생의 후속 질문. "어디 그래서야 히말라야 트랙킹 가겠어?"
일관성 있는, 게다가 독창성까지 겸비한 나의 비굴, "히말라야에 가려면 오늘 죽으면 안되잖아..."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한 잔이 열 잔이 되고, 열 잔이 여러번 돈 후에 집으로 향했다.
술기운에 절어 버스에서 졸다 깨다 이 날의 주제곡을 선정했다.
폼나게 레인보우의 곡 <Man on the silver mountain>. 선정의 변, '언젠가 히말라야에 갈거니까'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무리 뒤져도 레인보우 앨범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급 변경, 그 날의 빗소리를 들려드리고자 이미배의 <당신은 안개였나요>가 수록된 앨범의 끝 곡, <소나기>. 그러나, 착각했나부다. CD가 아니라 LP라 MP3 전환이 매우 귀찮다.

그래도 명실공히 이 블로그의 음악 담당이니, 어찌 한 곡 안 올리고 가겠는가!
본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곡이지만, 머리 속 복잡할 때는 산이 최고요, 그 다음은 재즈다.
재즈 중에서도 대책없이 펑키한 곡이면 더욱 좋다.
장마 끝나고 다가올 휴가, 그러나 여름 휴가비 없어 심란하신 분들에겐 산을 권한다. 물론 별 기대 안한다. 블로그 글 하나 보고 산에 갈 용기내기 힘들다... 그래서 펑키한 재즈 한 곡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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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준다, 펑키재즈 Soulive

소울라이브(Soulive)의 <Doin' something>이다. 재즈에 헤드뱅잉하는 오르가즘을 느껴보시라.
(2006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도 왔다 가신 분들이다. 그러나 팝 칼럼니스트는 늦게 가서 못 봤다... --;;)
 

* 첨부되었던 음원은 삭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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