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들의 추억

영화 이야기 2007. 5. 19. 17: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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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1968, 조지 A. 로메로 감독)



'시체'. 이거 참 으스스한 단어죠?  제가 공포영화광이거든요. 뭐, 다른 영화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특히 좋아서 미쳐 날뛰는 영화는 공포영화랍니다. 제 필명이 왜 'PD the ripper' 인지 아시겠죠? '매우 좋은 PD'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프롬 헬'에서 영감을 얻은 거랍니다.  

최광희기자 왈, 인생이 평탄하고 삶이 지루한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좋아한답니다. 삶 자체가 공포인 사람들은 결코 공포영화를 좋아할 수 없다더군요.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입니다.

공포영화가 선진국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일리있는 지적이지요. 하루 하루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생지옥인 아프리카 분쟁지역 사람들이 살이 찢기고 목이 잘리는 화면에 열광할까요? 그게 바로 자신들의 삶이니, 도저히 견뎌낼 수 없겠죠. 역설적으로, 선진국 도시인들이 무서워하는 건, 자신들의 일상에서는 절대 일어날리 없는 난도질 장면이 아니죠. 차라리, 서류정리하다가 A4 용지에 손가락을 베이는 장면이 더욱 공포스러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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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전 공포영화를 좋아합니다. 혹시, '닥터 기글' 이란 영화를 아시나요?  제가 꼽은 영화 베스트 10 에 꼭 들어가는 작품이죠. 네, 그렇습니다. 제 취향이 좀 거시기 합니다.

고등학교때 전 좀 특이한 넘이었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비디오카메라들고 설치고, 영화관 들락거리느라, 공부는 그까이꺼 대충~ 이었죠. 그래도, 워낙 머리가 좋아서리, 뭐 남들 하는 만큼은 성적이 나오더만요. (이 대목에서 다들 욕 한마디씩 날리시라. 스트레스 해소용 멘트 되겠습니다.)

어쨌든,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습니다. 그때 전, 방송반이었는데, 제가 비디오랑, TV 기자재 관리를 맡고 있었죠. 당시에 비디오는 참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집에 비디오데크 있는 집이 별로 없을 때 거든요.  저희 집도 비디오가 없어서 학교 방송실에서 몰래 영화 보는 일이 많았죠. 그러던 어느날. 두~둥...

다른 친구들이 저 혼자 영화 보는걸 알고는 무지하게 갈구더군요.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타고난 반골기질을 발휘하여 친구들의 숱한 전제와 폭압, 협박과 회유를 견뎌내며 나홀로 상영관을 사수하다가 그만... 상추튀김 한 방에...흑흑... 상영관을 개봉하고 말았죠.

장소는 교무실에서 가장 먼 3학년 1반 교실. 시간은 숙직교사가 TV에 빠져있을 밤 8시. 비디오 대여료 명목의 입장료 50원.(당시 수입 짭짤했습니다.) 상영작은 물론 내맘대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로 골라서 틀어줬죠. 가끔 야시시무비도 섞어가면서 (네, 탁월한 고객관리였습니다.) 20년이 다 된,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한 2주일 정도는 괜찮은 장사였습니다. 그 영화를 틀기 전까지는... 아... 내가 왜 그 영화를 골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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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틀어제낀 마지막 영화는 바로 그 유명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영화가 좀 독합니다. 팔이며, 목 잘리는 건 우습고, 내장 튀어나오는 건 옵션이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죠.

제가 평소 공포영화 좋아하는 걸 아는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몰래 구해둔 '빽판'(옛날에 불법 비디오를 '빽판'이라 불렀습죠) 라면서, 우리나라에는 죽어도 수입되기 어려운 영화라며 내밀기에, 덜컥... 가져다 틀어버렸죠. 그게 실수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여기저기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언놈은 쌍시옷 발음내며 나가버리고, 또 언놈은 충격과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뚫어지게 영화만 쳐다보고, 언 놈은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직행. 결국, 영화가 끝난 뒤, 전 얘들한테 '디질 뻔' 했습니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 영화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오래 갔죠. 몇 명은 영화 때문에 며칠간 밥을 못먹었다며 피골이 상접한 채,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또 몇 명은 밤마다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며, 육체적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날 영화를 같이 본 아이들 중 상당수가 한동안 공부에 열중할 수 없는 후유증을 앓았고, 3학년 1반 영화관은 영구폐쇄되고 말았죠.

어디 그뿐이면 다행이게요? 시체사건 1년후, 대입학력고사가 끝난 뒤에는 '너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못해서' 학력고사 점수가 5점은 낮아졌을거라는 친구들의 원망이 쏟아졌답니다. 지들이 시험 못본게 왜 내 잘못이란 말입니까? 개**들. 야시시무비 틀어줄땐 아양떨고 지랄이더니...흑흑...

이게 바로 '내 머릿속의 시체들'이라는 저의 추억 한 토막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꿈같은 시간들이네요. 그때 영화를 보며 같이 울고 같이 웃었던, 그 순수했던 아이들은 다 어디가고, 이젠 배나온 아저씨들만 제 옆에 남았네요. 세월이란게 참 거시기 하죠?

근데 말이죠. 졸업한지 20년이 다되가는 요즘에도 저 때문에 학력고사를 잘못봐서 지들 인생이 달라졌다고 '씨부리는' 동창들이 있답니다. 뭔놈의 기억력은 그리들 좋은지... 아마 환갑 넘어서도 저한테 똑같이 씨부릴 겁니다. 아무래도, '시체'는 제 업보가 될 모양입니다.

흠... 갑자기 '시체'가 땡기는군요. 오늘밤은 '하우스 오브 데드'를 봐야 겠네요. 근데, 감독 이름이 '우웨볼'이네요. '우웩~' 하면서 '볼' 영화란건가? 이름 하나는 걸작이네요. 그나저나, '닥터기글'은 왜 DVD가 안나오는 거죠? 아...듣고 싶다. 기글의 웃음소리. 

사족 : 이거 이미지는 어케 올리는 겁니까? 내가 올리면 왜 이미지가 안보이죠?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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