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해

별별 이야기 2008. 6. 30. 00:30 Posted by cinemAgora
환장할 노릇이다. 저 좀비들은 우리가 넘지 말라고 세워 놓은 버스를 으쌰 으쌰 줄 달아 끄집어 낸다. 소화기를 쏘며 막으면 "폭력 경찰 물러가라" 란다. 물대포를 쐈더니 소화전을 끌어와 맞불이 아닌 맞물을 쏜다. 멀쩡한 신문사 현관에 화분을 던지질 않나, 막으러 간 경찰을 에워싸고 인민재판을 한다. 그래 놓고 우리더러 폭력을 쓴단다. 멀쩡한 도로를 점거해 교통 흐름을 방해해 놓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차에 낙서하고 불법 주차 운운하며 끌어내는 게 폭력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폭력이란 말인가. 해산 작전에 나서면 저항한다. 저항하면 끌어 내야 한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방패와 주먹이 오갈 수밖에 없게 된다. 지들은 공권력을 향해 폭력을 휘둘러 놓고, 우리가 합법적인 진압에 나서면 폭력 경찰이라고 나부댄다. 환장할 노릇이다.

아마 지금 경찰 관계자들의 심정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그 분들을 설득할 마음은 없다. 현장에서 잠도 못자고 연일 계속되는 밤샘 시위에, 지칠 대로 지쳤으니 앞에 있는 시위대가 악마처럼 보이지 않으면 다행일 터이다. 그 심정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폭력'에 대해선 의미 정리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시위'란 말 그대로 정치적 의사 표시다. 그것도 상당히 강도 높은 의사 표시이며 민주 사회는 이같은 의사 표시 방식에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사실 언론도 있고 인터넷도 있는데 굳이 에너지 써가며 거리에 나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그 정치적 의사 표시의 주체들이 무척 화가 나 있다는 반증이다. 헌법상의 주권자들이 분노했다는 증거다.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처음에 시민들은 비폭력을 고수하려 애썼다. 지도부가 없었음에도 놀라운 자제력이 발휘됐다. 누군가 망치라도 들고 나오면 프락치로 몰릴 정도였으니 그 경이로운 자정 능력에 경찰은 고개를 숙여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최근 시위가 '어느 정도' 폭력적인 양상으로 흐르는데는 맥락이 있다. 우선,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 수위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 말라는데 강행했다. 듣는 척 꼼수를 부렸다. 많이 겪은 짓이다. 지긋지긋한 그 짓이 또 되풀이되니 열받지 않을 수 없다. 또 한가지,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할만큼 했다고 자위한 정권이 '지금부터 시위는 불법'이라는 낙인을 또 한번 지들 마음대로 찍었다. 광고중단 운동에 흠칫 놀란 조중동이 함께 춤을 췄다. 경찰도 강경으로 돌아섰다. 정권이 불법임을 인증했으니 거칠 게 없어졌다.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소화기를 난사했다. 그것도 모자라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렀다.  

엄밀히 말해 공권력은 국민으로부터 그 정당성을 위임 받은 물리력이다. 그 물리력이 정당성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국가 권력도 마찬가지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의심받았을 때 그들의 통치 행위는 즉각적으로 폭력이 된다.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하고 반대자들을 죽이는 데 주저하지 않은 박정희가 그랬고, 광주 시민의 목숨을 앗으며 들어선 전두환이 그랬다.

지금, 거리에 나서 촛불을 든 많은 시민들의 눈에 MB 정권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억만분의 일일지라도, 자기 국민의 목숨을 아끼려는 신심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배신감의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그 분노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청와대로~!"를 외치고 있다. 주권자들의 분노를 바리케이드로 봉쇄해 놓고 물대포를 쏘는 게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전에, 그릇됨을 질책하고 옳음을 실천에 옮기려는 시민의 열정을 폭력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광화문 네거리에 나와 성난 군중과 맞짱 떠 대토론을 하시라. 말버릇처럼 되뇌이던 소통과 상생의 정치에 도전하시란 말씀이다.

촛불 시위가 폭도들로 인해 변질됐네 따위의 낯익은 레퍼토리를 또 한번 들이미는 건 처연하다. 그렇게 따지면 4.19에 나선 학생들도 폭도였고, 총을 든 5.18 광주의 시민들도 폭도였다. 87년 6.10 항쟁에 나서 짱돌을 던진 시민들도 폭도여서 백골단한테 얻어 터지고 피를 흘렸다. 당시의 정권과 언론은 지금의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이 그대로 계승한대로, 그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마녀사냥 했다.

그 역사적 교훈을 통해 우리가 새기는 진실이 하나 있다. 국가 권력은 정당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 자기 국민을 향해 쉽게 폭력을 쓴다. 그러나 시민들은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을 쓴다. 그것은 정당하지 않은 권위의 명령을 수행하는 공권력이 훨씬 더 조직적이며 압도적인 힘으로 시민을 적대시할 때이다. 그 순간, 각성한 시민은 목숨을 걸고 공권력에 대한 주권자로서의 위임을 철회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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