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드는 몇가지 뉴스 상투어

TV 이야기 2008. 6. 17. 19:17 Posted by cinemAgora

전망됩니다,

예시) 이번달 소비자물가는 5퍼센트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망, 말 그대로 앞날을 헤아려 내다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방송 뉴스에서 이 말은 주로 '전망된다'는 식으로 쓰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니 전망의 내용은 있는데, 전망의 주체는 없다. 누가 그런 전망을 내놓았는지는 모호하다. 결국 이 말은 '기자 본인이 전망한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전망'에 슬쩍 '된다'를 붙임으로써 객관적인 척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도 상투적으로 자주 쓰다 보니 이렇게 굳이 안갖다 붙여도 되는 문장에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 "민주당은 다음 달 6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번 달 18일부터 29일까지 전국투어 및 TV토론회를 실시하며 본격적인 당권 레이스를 펼칠 전망입니다." 당권 레이스는 굳이 헤아려 내다 보지 않아도 될, 예정돼 있는 스케쥴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경우엔 그냥 "예정입니다" 정도로 써야 할 일이다.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시) 수시 1학기는 2010학년도부터는 폐지돼 서울시내 주요 대학은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망된다'와 마찬가지로 객관을 가장한 주관적 표현이다. 기자가 그렇게 보는 것을 '보인다'는 표현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로 포장하는 수사다. '관측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 관측의 내용은 있되 주체는 슬쩍 빠져 있다. 예시에 든 문장은 따라서 이렇게 새겨 들어야 한다. "수시 1학기는 2010년부터는 폐지돼 서울시내 주요 대학은 경쟁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혹은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예시) 부정부패는 개발도상 국가의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굳이 전문가가 지적하지 않아도 될 매우 상식적인 얘기다. 그런데도 전문가라는 말을 끌어와 말의 권위를 높이려는 상투적 수사다. 이 경우 기자는 실제로 전문가한테 의견을 들었을까? 저 당연한 말을 듣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혹시라도 진짜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면,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명시해야 사리에 맞다. 그러니 이 경우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부정부패는 개발도상 국가의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가로막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정치평론가 이 아무개 씨는 부정부패가 개발도상 국가의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가로막는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적입니다.
예시) 결국 이번 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와 건설기계 사업자, 건설업체 3자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경우에는 전문가를 끌어오진 않았지만 역시 지적의 주체가 빠져 있다. 누가 그런 지적을 한다는 말인가? 기자가? 국민이? 아니면 특정 전문가 그룹이?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말을 할 때는 명확하게 그 판단의 주체를 밝혀 줘야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뉴스 방송에서 기자들은 자신이 가치 판단의 주체임을 숨기는 수사를 자주 구사한다. 객관성을 가장한 이런 말장난이 습관처럼 배어 버려 아무 때나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사실 이런 기형적 표현들은 객관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뉴스 전달 과정이 현실적으로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기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온마이크'라는 형식으로 리포트 중간에 얼굴을 들이밀 때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전달한 보도 내용에 대해 책임감 있는 짧은 논평을 가미하는 건 어떨까. 거기에서조차 전문가를 끌어오고 전망된다느니 지적된다느니 하는 것은 왠지 비겁해 보인다. '내 생각에 이렇다'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뉴스 방송을 보고 싶다. 그런 뉴스에선 기자 개인의 생각이 객관적 사실로 오해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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