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경이 만난 사람 ① _ 무술감독 정두홍

애경's 3M+1W 2008. 5. 7. 16: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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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찌게보다는 스파게티를
싸나이들과의 술 한잔보다는 노천카페에서의 아줌마 버전 수다를
싱그러운 젊은 처자들보다는 82세의 등 굽은 노모를....
보다 더 좋아한다는 마흔 몇의 이 남자는
믿기 어렵겠지만, 열 살 차이 나는 내 친구다.


가만, 그러니까 벌써 6년 전이다. 2002년. 영화월간지 <프리미어>에서 열혈(!!!) 영화기자로 활동하던 그 때. 영화 <챔피언>의 LA 로케이션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리고 돌아와 서울. 어떻게 다시 연락이 된 건지, 어떻게 친분이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코드'가 통했던 순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인터뷰 자리였을게다. 당시 그가 액션 디렉팅한 그 어떤 영화에 대한 뻔하고 뻔한 식상한 문답들이 오갔던 것 같다. 그 말미에... 나는 당시 '체험기'로 다녀왔던 정신과 얘기를 꺼냈다. 기사를 쓰기 위한 '몰모트' 형식의 체험 취재였지만, 당시 나는 정신과와 꽤나 궁합이 잘 맞았고 그 사실을 정 감독에게 주책맞게 털어놨던 것 같다. 그러자 그는 "나도 그렇다" 했다.

"한때 몸 쓰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만이 있었지. 싸움도 최강이라 생각했고. 그런데 한번은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붙었어. 외국 놈들이었는데, 만취한 상태의 나는 더더욱 무서울 것이 없었지. 그런데 흠씬 두드려맞아 곤죽이 됐지. 며칠 앓아누웠었는데,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심했어. 그 뒤로 난 한동안 술 담배 이런 걸 다 끊었었지. 그런데도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 별 도움 안됐지만. 하하... 그 에피소드 이후에, 난 많이 겸손해졌지. 자만하지 않고."

정확하진 않지만, 정 감독은 대략 이런 뉘앙스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얻어 맞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인간들.
제 아무리 '그 길은 아니야' '그건 나쁘다니까' '그건 위험해'라는 조언이 들려와도,
직접 부딪혀 경험하고 상처받고 깨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말도 믿으려 들지 않는 인간들.
흘러 넘쳐 수습이 안되는 에너지가 약인 동시에 독으로 작용하는 인간들.
이러한 성향적 공통 분모와 함께 '한때는 정신과 치료 환자'라는 유대감이 더해져,
그 이후 우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안부 인사를 건네는 그런 사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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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바닥에서 그럭저럭 오래 굴러먹은 나는 얼굴에 분 칠한 것들,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며 밥벌이의 지겨움을 체화하고 있는 이 언저리 피플들과의 의리를 믿지 않는다.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트렌드와 다름없이 급히 왔다 부질없이 사라지곤 한다. 때문에 나는, 정 감독이 내게 보여주는 '친절함' 혹은 '호의' 역시  그저 '에너제틱한 여기자에 대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초반엔 경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여줬던 '친밀감'은 진짜였다. 물론 그걸 확인한 순간순간의 감상은 좀 촌스럽다. 내 결혼 사진 중 '신랑신부 친구 동료들 촬영' 순간에 '신부측 하객' 쪽에 뻘쭘하게 서 있던 그의 얼굴을 뒤늦게 확인했을 때, 촬영 장소 헌팅을 위해 헤이리에 들른 임신 7개월의 배부른 내게 '생명을 품은 존재는 잘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스파게티를 사주셨을 때, 내 지인들과 함께 한 브런치 자리에 뒤늦게 등장해 '친구 만나러 들렀죠. 김 기자, 내 친구라니까'라고 말해줬을 때, 정말 절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나눌 수 없는 그리고 진짜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인생 고민'을  서로에게 스스럼 없이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던 그 어떤 순간들에............ 나는 깨달았다.

'이 인연, 꽤 오래 가겠구나...'

흠흠, 너무 길다. 할 일이 태산. 이만 끊어야겠다. 슬쩍 아쉬우니까 폭로 하나 하고 마칠까 한다. 1년 여 만에 만난 정감독이 어제 내게 들려준 뜨끈뜨끈한 얘기.

"척추뼈가 다 삭아있어. 아침마다 일어나면 몸이 움직여지질 않아. 2층에서 깨어 1층으로 내려오는데, 난간이나 벽을 잡지 않으면 걸을수가 없을 정도지. 매일 아침마다 골프공 마사지를 해. 골프공을 척추에 맞추고 그 위에 눕는거지. 옆에서 보면 골프공을 지지대 삼아 몸이 붕 떠 있는 묘기처럼 보여. 가관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니까. 매일 아침마다 그래."

누가 알겠는가. 그의 액션 그의 단단한 근육 그의 날카로운 눈빛 등만을 지켜봐 온 사람들이,
실은 그가 '아침마다 골골'하는 처지에 '외로운 싱글'이고 '82세 노모를 부양하는 막내 아들' 이며 무엇보다 '룸싸롱에서의 양주와 유희'보다는 '노천카페에서의 3시간 가까운 아줌마 수다'를 더 즐기는 남자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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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여 만에 만난 그에게 난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를 드렸고,
그는 내게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차 마시던 중 잠시 나갔다 온다더니, 그 사이 꽃배달 서비스를 시킨 모양이다.
꼭 꽃 때문은 아니지만, 이날 난 저녁까지도 계속 유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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