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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찌게보다는 스파게티를
싸나이들과의 술 한잔보다는 노천카페에서의 아줌마 버전 수다를
싱그러운 젊은 처자들보다는 82세의 등 굽은 노모를....
보다 더 좋아한다는 마흔 몇의 이 남자는
믿기 어렵겠지만, 열 살 차이 나는 내 친구다.


가만, 그러니까 벌써 6년 전이다. 2002년. 영화월간지 <프리미어>에서 열혈(!!!) 영화기자로 활동하던 그 때. 영화 <챔피언>의 LA 로케이션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리고 돌아와 서울. 어떻게 다시 연락이 된 건지, 어떻게 친분이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코드'가 통했던 순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인터뷰 자리였을게다. 당시 그가 액션 디렉팅한 그 어떤 영화에 대한 뻔하고 뻔한 식상한 문답들이 오갔던 것 같다. 그 말미에... 나는 당시 '체험기'로 다녀왔던 정신과 얘기를 꺼냈다. 기사를 쓰기 위한 '몰모트' 형식의 체험 취재였지만, 당시 나는 정신과와 꽤나 궁합이 잘 맞았고 그 사실을 정 감독에게 주책맞게 털어놨던 것 같다. 그러자 그는 "나도 그렇다" 했다.

"한때 몸 쓰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만이 있었지. 싸움도 최강이라 생각했고. 그런데 한번은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붙었어. 외국 놈들이었는데, 만취한 상태의 나는 더더욱 무서울 것이 없었지. 그런데 흠씬 두드려맞아 곤죽이 됐지. 며칠 앓아누웠었는데,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심했어. 그 뒤로 난 한동안 술 담배 이런 걸 다 끊었었지. 그런데도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 별 도움 안됐지만. 하하... 그 에피소드 이후에, 난 많이 겸손해졌지. 자만하지 않고."

정확하진 않지만, 정 감독은 대략 이런 뉘앙스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얻어 맞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인간들.
제 아무리 '그 길은 아니야' '그건 나쁘다니까' '그건 위험해'라는 조언이 들려와도,
직접 부딪혀 경험하고 상처받고 깨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말도 믿으려 들지 않는 인간들.
흘러 넘쳐 수습이 안되는 에너지가 약인 동시에 독으로 작용하는 인간들.
이러한 성향적 공통 분모와 함께 '한때는 정신과 치료 환자'라는 유대감이 더해져,
그 이후 우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안부 인사를 건네는 그런 사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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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바닥에서 그럭저럭 오래 굴러먹은 나는 얼굴에 분 칠한 것들,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며 밥벌이의 지겨움을 체화하고 있는 이 언저리 피플들과의 의리를 믿지 않는다.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트렌드와 다름없이 급히 왔다 부질없이 사라지곤 한다. 때문에 나는, 정 감독이 내게 보여주는 '친절함' 혹은 '호의' 역시  그저 '에너제틱한 여기자에 대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초반엔 경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여줬던 '친밀감'은 진짜였다. 물론 그걸 확인한 순간순간의 감상은 좀 촌스럽다. 내 결혼 사진 중 '신랑신부 친구 동료들 촬영' 순간에 '신부측 하객' 쪽에 뻘쭘하게 서 있던 그의 얼굴을 뒤늦게 확인했을 때, 촬영 장소 헌팅을 위해 헤이리에 들른 임신 7개월의 배부른 내게 '생명을 품은 존재는 잘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스파게티를 사주셨을 때, 내 지인들과 함께 한 브런치 자리에 뒤늦게 등장해 '친구 만나러 들렀죠. 김 기자, 내 친구라니까'라고 말해줬을 때, 정말 절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나눌 수 없는 그리고 진짜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인생 고민'을  서로에게 스스럼 없이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던 그 어떤 순간들에............ 나는 깨달았다.

'이 인연, 꽤 오래 가겠구나...'

흠흠, 너무 길다. 할 일이 태산. 이만 끊어야겠다. 슬쩍 아쉬우니까 폭로 하나 하고 마칠까 한다. 1년 여 만에 만난 정감독이 어제 내게 들려준 뜨끈뜨끈한 얘기.

"척추뼈가 다 삭아있어. 아침마다 일어나면 몸이 움직여지질 않아. 2층에서 깨어 1층으로 내려오는데, 난간이나 벽을 잡지 않으면 걸을수가 없을 정도지. 매일 아침마다 골프공 마사지를 해. 골프공을 척추에 맞추고 그 위에 눕는거지. 옆에서 보면 골프공을 지지대 삼아 몸이 붕 떠 있는 묘기처럼 보여. 가관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니까. 매일 아침마다 그래."

누가 알겠는가. 그의 액션 그의 단단한 근육 그의 날카로운 눈빛 등만을 지켜봐 온 사람들이,
실은 그가 '아침마다 골골'하는 처지에 '외로운 싱글'이고 '82세 노모를 부양하는 막내 아들' 이며 무엇보다 '룸싸롱에서의 양주와 유희'보다는 '노천카페에서의 3시간 가까운 아줌마 수다'를 더 즐기는 남자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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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여 만에 만난 그에게 난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를 드렸고,
그는 내게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차 마시던 중 잠시 나갔다 온다더니, 그 사이 꽃배달 서비스를 시킨 모양이다.
꼭 꽃 때문은 아니지만, 이날 난 저녁까지도 계속 유쾌했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신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Good!!
    오랜만에 올리신 글 반갑네요 ^^

    2008.05.07 23:37
    • 알 수 없는 사용자  수정/삭제

      반가워해주시니 좋네요. 정말 오랜만이죠? 와우... 요즘 애 낳는 거보다 더 고된 마감 작업중이랍니다. ^^ 몇 달 지나면 숨 좀 돌리겠죠? 앞으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얘기 좀 올리려고 합니다. 호호 재밌겠당~ (지가 쓸건데 지가 재밌다네. ㅋㅋ)

      2008.05.07 23:59
  2. BlogIcon Fingeren  수정/삭제  댓글쓰기

    얻어맞고 정신차리는 인간들. 이란 표현이
    참 멋있네요^^

    2008.05.08 01:12 신고
  3. 김수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동안 작가님의 글이 왜 안 올라오나 했답니다. 아 이젠 편집장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
    저도 그때 말씀하신 잡지책 꼭 보고 싶네요...
    아에 제 가게에 비치를...
    그때 글 계기로 인연이 되었던 분들이 아직도 오신답니다.
    아주 재밌는 인연이에요~^^
    새로운 잡지 모두가 아는 유명한 잡지가 되기를 바라면서~~~~

    2008.05.08 01:47
  4. BlogIcon isdot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멋진. 정두홍 감독.! 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허허-

    2008.05.08 04:25 신고
  5. 그냥질문인데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잘몰라서요;; 정두홍 감독님 결혼하신거 아니셨어요?
    어디서 줏어들은거 같은데;;;;-ㅂ-
    아니면 죄송해요ㅠㅠ~

    2008.05.08 09:23
  6. 크모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두홍님 진짜 좋아했었는데..
    네 멋대로 해라에서 최고!! ㅠㅠ

    2008.05.08 10:17
  7. 세정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현실이 어떤데. 정두홍이고 뭐고 이런게 추천수가 29나 되네요. 촛불 문화제엔 나가보셨는지요. 영화배우 정찬씨는 촛불 문화제에 가셨던데.

    2008.05.08 12:21
    • BlogIcon 세정아  수정/삭제

      너 학생이냐

      부모님얼굴은 왜보냐

      부모님얼굴 볼 시간에 시위해야지

      잠은 왜자냐

      잠잘시간에 시위해야지

      2008.05.08 12:26
    • zzz  수정/삭제

      너같은 애들때매 중고딩들 괜히 시위나가뻘짓말고 공부나 하세요 라는 말이 신빙성을 얻게 되는거심.

      2008.05.08 12:32
    • 세정  수정/삭제

      여보세요. 저 학생 아니거든요. 30대 초반의 건설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여성입니다. 님들아. 정신 좀 차리셈. 여기에다가 그따위 글로 추천수를 따먹는 분들.. 정두홍씨가 척추뼈가 삭았던, 척추뼈가 안 삭았던, 이게 무슨 추천인지 알수 없네요. 제 생각만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2008.05.08 17:20
    • 나그네  수정/삭제

      To 세정...본인 생각을 남들에게 강요는 하지 말게나.. From 40대 아저씨가

      2009.06.11 10:00
  8. a  수정/삭제  댓글쓰기

    척추가 삭았어? 몸을 너무 거칠게 써서 빨리 늙었나보네...ㅠㅠ
    지금이라도 잘 처치하면 나아질려나?
    나도 건강하지 않은데...ㅠㅠ

    2008.05.08 13:01
  9. 어이그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서른 넘게 먹고 철없는 중고딩들처럼 이러고 있는게 자랑이유?
    대체 뭘 건설하려는 생각을 가진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딴 눈살 찌푸려지는 선동질은 좀 하지 마슈. ㅉㅉㅉ

    2008.05.08 18:03
  10. Irony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자님, '찌개'를 '찌게'로 쓰신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일회적인 실수라고 생각하겠습니다.

    2008.05.13 10:43
  11. BlogIcon how to become a reseller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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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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