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영화 보는 중간에 요의를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극장 안에만 들어서면 (특히 흥미 진진한 영화이거나 긴장감을 돋우는 스릴러 장르일수록 더!) 신장이 지나치게 활발하게 작동하기 일쑤다. 그것도 꼭 얄궂게시리 영화의 절정부에 이르러 인내력으로 버티기엔 한계에 다다를 때가 많다.

그래서 티켓을 구매할 때도 가급적 가장 자리나 맨 뒷자리로 요구하곤 한다. 방광의 압박에 따른 생리 현상은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지만 영화에 몰두하는 다른 관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일반적인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관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나같은 생리적 소수자(?)들을 위한 그 세심한 배려에 나름 절박한 순간엔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헌데 그 세심한 배려는 영화제에선 해당 사항 없다. 영화제는 다수 관객들을 위한 에티켓이 절대시되는 자리다. 한번 들어가면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게 기본 매너로 강조된다. 이곳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요의를 억누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가 자원활동가들의 염라대왕적 눈흘김을 받아야 했는데, 거기에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퇴장 통보까지 들어야 했다. "다시 들어가지 못하십니다!"  한번은 용케 끝까지 참았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에 후다닥 일어났으나 출구 앞에서 퇴장을 저지당하는 일도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나가지 못하십니다!" 아이고~ 이번엔 갇힌 셈이니, 도대체 내 신장이 무슨 죄란 말인가.

영화제측의 원칙이 하도 서슬 퍼렇다 보니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실록 연합적군>의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상영에 앞서 가진 무대 인사에서 "중간에 화장실 갈 일 생겨 나가시면 다시 못들어오신다니, 지금이라도 미리 다녀오시는 게 낫겠다"는 충고를 할 정도였다.  

사실 영화제가 이런 철칙을 지키려 하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고자 하는 다수 관객들을 위한 것이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오페라나 공연 관람 때도 대체로 이런 철칙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른 관객에 대한 예의를 지켜 달라는 주문이다. 실제로 영화제에선 종종 관객들이 우르르 상영관을 빠져 나가는, 주최측으로선 다소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니 더욱 에티켓과 매너를 강조할 수밖에 없으려니, 싶다.

헌데,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좀 안되나? 모든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한 영화가 마음에 안들 경우 상영관을 빠져 나올 권리도 있다. 그것이 설령 다른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피해가 된다 할지라도(살살 조심조심 빠져나가면 사실 큰 피해도 아니다) 매너가 개인의 무한 인내를 강요할 정도의 절대 덕목이라고 믿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선택을 무시하고 에티켓이나 매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상황은 마치 사람 나기 전에 먼저 영화가 난 것인양 믿어 의심치 않는, 영화 근본주의적 도그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리 영화제라지만, 이른바 고급 예술의 에티켓 지상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게 팝콘 씹으며 부담 없이 관람하는 게 일상화돼 있는 관객에게 일말의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거꾸로, 상영관을 빠져 나가는 이들을 관용하는 것도 매너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도 영화가 개판일 때는 썰물처럼 관객들이 빠져 나가는 해프닝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또한 그것 자체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어느 영화, 관객들이 보다가 겁나게 나갔다며?"라는 얘기는 "그 영화 꽝이라며?" 라는 말, 혹은 "그 영화에 많은 관객들이 적응을 못했군"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이것도 크게 보면 영화와 소통하는 방식이며 영화제적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냔 얘기다.

이렇게 본다면, 생리 현상의 압박으로 인해 민망함과 미안함을 무릅쓰고 도둑 고양이처럼 살살 화장실에 다녀오는 황망한 죄책감쯤이야 슬쩍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화제에 있어 영화는 소중한 것이고, 존중해야 할 예술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마려운 오줌을 참으면서까지 존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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