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에어' 신선하고도 식상한

TV 이야기 2008. 3. 31. 09:22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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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BS 드라마 '온 에어'가 화제라서 몇 회분을 봤는데 '영화판이 불경기이긴 한가 보다'는 엉뚱한 생각부터 든다. 송윤아, 김하늘, 이범수까지, 제법 거물급 배우 세 명을 온전히 모셔다 놓았다. 거기에 전도연, 강혜정, 엄지원 등의 영화 배우들이 카메오 출연으로 사이드 지원까지. 영화 쪽이 죽을 쑤니 배우들이 한가하고 덕분에 TV 드라마가 노난다. 하긴 요즘 충무로 제작자들 가운데 TV 드라마를 기획중인 분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아무려나, 지지리 궁상 끝에 등장 인물 모두가 천사가 되는 걸로 끝나는 가족 드라마이거나 울고 불고 찧고 까불다가 남녀 주인공이 사이 좋게 행복의 나라로 동행하는 멜로가 전부이다시피한 한국의 방송가에서 이 정도 내용이라면 꽤 진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직업 세계를 무대로 한데다, 그나마 일은 안하고 연애질만 일삼는 의사 검사 실장님이 아니라 일에 대한 자존심이 투철하다 못해 넘쳐 흐르는 프로들의 얘기니 흥미를 끌 수밖에 없다.

<온에어>는 드라마 제작과 관련한 현장의 이전투구를 약간 과장을 섞어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콧대 높은 걸로는 자웅을 겨루기 힘든 서영은 작가(송윤아)와 스타 배우 오승아(김하늘)의 치고 받는 대사빨도 감칠맛을 더한다. 작가는 연기 안되는 배우를 씹고, 배우는 뻔한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작가를 몰아 세운다. 시청자 입장에선 둘다 맞는 말이니, 머리끄댕이만 안잡은,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의 싸움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방송 드라마가 시청률을 위해 이처럼 자신들의 세계를 조롱할 정도까지 됐으니 '오죽하면~'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웨스트 윙>의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쓴 NBC 드라마 <스튜디오 60>이나 일본 후지 TV의 <여자 아나운서>가 떠오르면서 대견한 지점도 없지 않다. <하얀 거탑> 효과일 수도 있겠다. MBC의 <뉴하트>에 이어 <온에어>의 등장은, 한국 드라마가 '트렌디'에서 '직업'으로 테마를 급이동중임을 짐작케 한다. 일본에서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주요 채널이 트렌디 드라마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다가, 시청률이 정체되면서 직업 세계의 애환을 담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우리 역시 어느 정도는 그같은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뭐랄까, 이 신선한 시도에 흔쾌히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을 멈춰 세우는 부분도 없지 않다. 일단 나는 이경민 피디를 연기하는 박용하한테 감정 이입이 잘 안된다. NG 장면을 보니 제법 표정이 풍성한 배우인 것도 같은데, 카메라에 비쳐진 그의 표정은 거의 딱 하나다. 밀랍 인형처럼 굳어 있다. 송윤아의 오버 연기는 흥미롭지만 가끔 지나치고, 매니저 역을 맡은 이범수의 연기는 별로 유연하지 못하다. 내 눈엔 네 명 중에 김하늘이 제일 낫다. 극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직업을 연기하고 있어서일까? 

트렌디 드라마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을 합작한 신우철 피디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극 구성에서도 여전히 트렌디의 범주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한 채 식상한 멜로 코드를 되풀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만에 헌팅 가서 우연히 조우한 이경민 피디와 오승아가 거리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선 상투적 설정과 화면 전개의 극치를 보여준다. 극성팬들 좀비 떼처럼 우르르 몰려오니 당황한 두 사람 손 잡고 빗속을 뛴다. '이때쯤 손 클로즈업 나와야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다. '저것들 또 티격태격하다가 정분 나겠군. 공식이지. 암!'

시청자들 눈 많이 높아졌다. 기왕 신선하게 갔으니 많이 써먹던 수법은 좀 내려 놓자. 더도 덜도 말고, <온에어>가 한국 드라마의 영역을 반 뼘만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으로선 딱 그 정도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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