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배우고 싶을 때, Start

음악 이야기 2008. 3. 24. 10:08 Posted by cinemAgora
성장기의 소년들에겐 로망이란 게 있다. 그리고 그 로망의 대상은 시기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내 경우, 취학 전엔 로버트 태권 V의 조종사였고, 보드 게임 '부르마블'에 심취한 초등학교 6학년 쯤엔 전세계를 주름잡는 호텔업자가 돼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대동소이했던 내 로망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개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친구들이 좋아하는 건 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소신으로 기울었다. 당시 이런 저런 헬스 기구들을 방에 들여와 남성성의 상징인 근육 키우기에 여념이 없던 친구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를테면 그들의 로망은 람보나 터미네이터였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을 읊조리던 나로선 그들의 로망이 살짝 유치해 보였고, 하다 못해 철봉대에 매달리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로 약골이라는 놀림을 받더라도 속으론 근육질 친구들을 비웃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친구들의 방에 통기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근육에 이어 기타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성을 꼬시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의 친구들에게 기타의 로망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을 것이다. 놀러갈 때마다 악보책을 뒤적이면서 <품행제로>의 류승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목청과 연주 실력을 뽐내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보며, 나는 또 한번 '개나 소나 말이나 다 하는' 기타는 결코 배우지 않겠노라고 시답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된다. 지미 핸드릭스나 잉베이 맘스틴처럼 칠 게 아니라면 기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왜 그리 괜히 전투적이었는지. '향유'가 아닌 '소유'가 고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일본 그룹 'Depapepe'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으면 그 때 친구들을 따라 기타를 배우지 않은 내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그리고 기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 된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지는 연주. 기타를 애인처럼 가슴에 품은 채 현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손목의 느낌, 그리고 현과 충돌할 때 전달돼 오는 손가락의 진동이 얼마나 경쾌하고 신날까, 마냥 부러워만 지는 것이다.

때론 아름답고 좋은 취미라면 그냥 남들 따라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쓸데 없이 고집 피우다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노래방 템버린밖에 남지 않은 뒤에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월요일이다! 또 한 주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힘찬 출발을 위해 BGM 하나 깔아드린다는 게 말이 길었다. 아무쪼록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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