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으로의 진화를 위한 타블로의 변신

음악 이야기 2007. 12. 11. 18: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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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MBC 7층에서 타블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타블로가 먼저 예의바른(!) 인사를 건넨다.  
예전 SBS Radio DJ 시절, DJ와 초대손님으로 에픽하이를 만난적이 있었다.
그와의 안면은 그것이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상투적인 나의 답례가 이어졌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앨범이 들려 있었고, 수줍은 듯 그 앨범을 내게 내민다.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에픽하이가 신보를 냈나요?" 눈치없는 나의 질문, 그리고 그의 대답.
"아니요. DJ를 하는 페니(Pe2ny)라는 친구와 둘이서 프로젝트 앨범을 냈습니다."
앨범엔 Eternal morning이라고 쓰여 있었다.
앨범을 받고 짧은 목례후에 그와 헤어졌다.

얘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Eternal morning이라고 명명된 앨범을 플래이어에 걸었다. 첫 곡부터 낯설다. 타블로나 에픽하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넘겨 받은 이미지가 적절히 자리잡을만한 공간이 없다. 읊조리는 여성의 나레이션과 이정식의 색소폰이 어반 사운드(Urban sound)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소리들은 힙합이라는 장르로 불리우지만 대중 취향의 팝 사운드를 담고 있던 에픽하이의 음악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건 도대체 뭘까? 타블로라는 익숙한 이름을 크레딧에 포함하면서도 인트로부터 청자의 기대를 능숙하게 배신해버린 이 음반의 정체는? 그리고 타블로의 의도는?'

에픽하이는 주류(mainstream) 그룹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 될지 모르겠지만, 에픽하이라는 그룹의 음악이 상업성이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자, 그들의 인기와 음원의 판매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타블로는 그 주류 그룹의 일원이다.

그러나 에픽하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으로서의 타블로는 전혀 다른 지향점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어반 뮤직,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적 분류,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류라는 근사치 스타일의 설명이 [Eternal morning]의 사전적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은 기존의 에픽하이와는, 그리고 그룹의 브레인으로서의 타블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음악이 앨범에 담겨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 그룹 활동의 노선과는 다르게 대중적이지 않은 비주류 장르를 선택하고 있으며, 보컬 없는 score는 상업성의 결정적 요소마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기 절정의 그룹 멤버에게 이런 과도한(!) 실험을 감행하도록 한 것일까?'

대중 가요계는 샘플링과 자기 복제로 자생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리지널리티의 순수성은 힘든 길을 찾아가는 멍청한 일로 취급되고, 무한 반복되는 자기 노래 배끼기는 1집과 2집의 변별력을 소멸시켜 앨범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시류의 우울함 속에서 우연히 듣게 된 Eternal morning의 음반은 타블로라는 에픽하이의 한 멤버가 뮤지션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발견한 반가움을 전해준다. 음악적 변화의 시도는 그가 뮤지션으로의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변화의 폭이 에픽하이라는 소속팀의 아우라에 기대 안정적으로 기존 팬들을 끌어안고 가는 마이너 변형의 형태가 아닌, 전폭적이고 낙차 큰 커브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모험적인만큼 자기 음악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테며 그 모험을 앨범이라는 완성형으로 내놓음으로써 자기 실현의 의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샘플링이나 자기 복제의 틀을 깬 익숙하지 않음과, 그 안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 음악들을 담아 놓고 있는 것에 타블로의 변화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르의 이동이나 특정 스타일의 집착이 진화 운운하는 평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타블로의 변신을 진화라는 단어로 연결시키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가 대중적 지지 기반을 지닌 팝 스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부연하면 그가 이미 상업적 성공으로 음악계 활동 목적의 절반은 획득한 수혜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수혜의 반대편 꼭지점에서 다시 써나가는 음악은 그가 아직 스스로 음악적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기 시작하며 평범했던 가수(singer)는 뮤지션(musician)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또 하나의 상업적 성공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으로의 무모한(!) 시도에 '뮤지션으로의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션이란 말 그대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 음악에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주류의 뮤지션이 비주류의 음악을 선택한 진지하고도 깊은 고민의 지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시장여건이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 것인가에 대한 확인과 함께 말이다. 의지가 있다면, 음악에의 열정이 있다면, 다른 무엇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타블로의 변신은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신을 감행할 만큼 자신들이 택한 음악이란 분야에 애정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가수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말이다.          


타블로와의 잠시 스치듯 지나친 만남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앨범을 들어보고 블로그에 글을 써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그는 앨범을 건네며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이라 기대했을까?
어쩌면 스스럼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것에서 그의 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ternal morning] / Eternal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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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블로와 페니가 함께 한 프로젝트 듀오의 앨범
* 일렉트로니카를 배경에 두고 색소폰과 건반, 현악기의 편곡으로 어반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다.
* 곡마다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배치해 감상의 포인트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 한가지 아쉬운 점은 컨셉에 묶인 곡들로 인해 전체 감상이 조금은 지루해진 느낌이다. 비슷한 템포로의 진행들이 곡마다의 차이를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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