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영화 이야기 2016. 9. 3. 19:46 Posted by cinemAgora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붕괴'는 굉장히 역설적이게도 '친숙'하다. 우리는 멀쩡한 다리(성수대교)가 두부처럼 잘리는 것을 목격했고, 멀쩡한 백화점 건물(삼풍)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도 보았다.


한편, '터널'이라는 공간은 다층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길을 막은 산을 뚫었다는 표층적 의미 말고도, 삶의 어두운 국면을 은유할 때 우리는 곧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터널'과 '붕괴'가 만났을 때 연상되는 메타포는 심층적이되 단순하다. 실제로 터널은 토목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영화 <터널>은 그걸 무너뜨린다.


붕괴된 터널은 영화가 직관하는 한국 사회이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시공간. 그건 영화적 설정이되, 영화 바깥의 세상에 대한 논평이다.


터널 안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하정우는 허술하게 설계된 터널에 영문도 모른 채 갇혀 버린 보통 사람이다. 그를 구조해내려는 바깥의 상황은 한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다.


현장에 얼굴을 들이민 장관은 "잘 협의해서 잘 해결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일삼고, 사람이 매장된 바로 옆의 터널 공사를 추진하려는 세력은 발파 공사를 강행하려고 한다. 매장된 하정우가 수십일이 지나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끝까지 붙잡지 못하는 건 여기, 대한민국 사회의 실용주의적 공기가 필연적으로 도출하는 결론이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그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영화 <터널>에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장을 방문한 장관이 여성(김해숙)으로 설정돼 있는 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을 직접적으로 은유하지 않기 위해, 그래서 관객들의 가슴을 쥐어짜지 않으려고, 코미디를 뒤섞는 안간힘을 쓴다. "이건 영화입니다. 영화이니까 편안하게 보세요."라는 제스처를 쓴다. 그런 제스처가 거꾸로, 나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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