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영화 이야기 2016. 9. 3. 19:32 Posted by cinemAgora

영화 <밀정>의 첫 장면에서 독립운동가로 나온 박희순은 일본군에게 기습을 당하자 달아나다가 엄지 발가락에 총을 맞는다. 창고로 급히 숨어든 박희순은 총을 맞은 발가락을 애써 신체에서 분리시킨다. 이 대목에서 적지 않은 여성 관객들이 눈을 질끈 감는다.

박희순은 왜 굳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발가락을 떼어냈을까. 거기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독 김지운은 왜 이 마조히즘적(연출가 입장에서는 사디즘) 장면을 애써 집어 넣었을까? 영화의 처음부터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 막판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설정, 그러니까 막판의 반전을 위해 개연성 없는 핑계를 앞에 배치하는 시나리오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영화 내내 김지운의 일제 강점기는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화려한 액션과, 공유와 송강호가 나누는 반쯤 개그를 위해 동원된다. 시대를 영화적 쾌감을 위해 동원하는 것은 그의 전작 <놈놈놈>이나 박찬욱의 <아가씨>나 이 영화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는 절절한 아픔이 없는 대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우리끼리의' 불신만이 가득하다. 시대는 누아르라는 장르 공식에 박제처럼 종속돼 붙박힌다.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감독의 역사 의식과 고민이 일천하다는 것은 논평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시대는, 유명 감독들에게 그저 영화적 미장센에 대한 욕망을 한껏 펼쳐 놓는 무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재확인하는 씁쓸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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