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 감동 받는 이유

영화 이야기 2014. 8. 6. 04:53 Posted by cinemAgora

1597년 9월 어느날 아침, 12척의 배를 이끌고 300여 척의 왜선과 싸우러 나가는 이순신의 심경을 헤아려 본다. 

그는 전날 장수와 병사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병법에 이르되,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원칙론이다. 어쩌면 그조차, 그날 목숨이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반대했다. 부하 장수들은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전투라는 걸 알고, 대장선 홀로 왜선들을 맞이하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멀찌감치서 구경만 했다. 제 아무리 용기와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건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조정조차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수군을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을 내린 바 있지 않은가. 객관적 정황과 아군의 사기, 그 모든 상황이 이순신에게 절대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을 독려해 나섰다. 그는 이기기 위해 나선 것일까? 아니면 그저 싸우기 위해 나선 것일까? 승리가 목적이었을까, 그저 그렇게 나서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기고 짐은, 싸워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바로 지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명량>의 이순신을 보며 감동 받는다. 우리가 감동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고 판단되면 아예 나서지 않는 우리가, 감동할 자격이 있을까. 싸워보지도 않고 이길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앞으로 등 떠민 이순신을 저 멀리 구경하고 있는 부하 장수들의 입장인 터에. 극장에서나마 나는 정의에 동감하노라, 자족하고 금방 현실에 비겁하게 안주하고 말 입장인 터에 말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지고 또 지는 신세인 주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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