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생 때만 해도 음악 깨나 듣는다는 친구들은 죄다 서양의 롹이나 팝을 들었습니다. 어쭙잖게 민족주의 물이 좀 든 다음에는, 그런 이들을 "문화적 사대주의자"라고 경멸하곤 했죠.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약간 덜 떨어진 행위같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에로물의 향연 속에서 한국영화 관람은 관음증을 해소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21세기 이후 문화적 지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롹과 팝을 듣는 이보다 가요를 듣는 이들이 훨씬 더 많고,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의 가장 보기 좋은 곳에서 매일 중계하고 있는 수치에 따르면, 2013년 2월 현재 84.6%에 달합니다. 문화에 있어서 한국 소비자들의 자국 콘텐츠 사랑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을 넘어 유난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일까요?
<방가? 방가!>라는 작품을 연출한 육상효 감독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문화에서 자국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데 수반되는 건강한 문화적 사색을 위협할 수도 있다."
곱씹어볼 말인 것 같습니다. 롹과 팝을 문화적 사대주의로 매도했던 제가 요즘 롹과 팝을 그리워합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것으로만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세상이라면, 그것은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은 아닙니다. 문화는 다양성 위에서야 문화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