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돈의 풍속화
<황금시대> 중 <유언 Live>
돈돈돈. 돈이 늘 문제다. 돈 때문에 친구들끼리 낯을 붉히고, 돈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 난다. 하다 못해 그 유명한 드라마 대사 “얼마면 돼?”도 사랑조차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입증된 믿음의 소산 아니겠는가. 벌만큼 번듯한 여배우도 자연스레 돈 있는 사람에게 시집간다. 물론, 당사자들은 돈이 다는 아니라고 하겠지. 하지만 돈이 사람의 아우라를 만들어준다. 무릇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개인의 매력을 형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니까. 배금주의, 또는 황금만능주의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의식을 복잡하고도 거대한 힘으로 지배하게 된 지 오래다.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황금시대>는 제목대로 ‘돈’을 공통 화두로 열 명의 감독이 연출한 열 편의 단편을 한 데 묶어 놓은 옴니버스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돈 때문에 행복한 이들은 한 명도 안 나온다. 다들 돈 때문에 지지리 궁상이고 돈 때문에 악다구니다.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는 쫄딱 망한 두 명의 젊은이가 자살하기 직전의 풍경을 원신 원커트로 보여준다. 처절한 상황이어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건, 두 사람이 목숨을 함께 끊으려는 마당에도 끝내 돈이 이들을 기만하는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불안>을 통해 돈에 대한 욕망이 한 가정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간 상황을 극적인 장면 속에 녹여낸다.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은 왕따 여학생과의 순수한 관계를 꿈꾸던 소년의 로망이 폭락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포착한다.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은 1년이 넘게 로또에 연속 당첨된 한 젊은이의 사연을 당사자와 주변인들이 펼치는 가상의 증언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페이크 다큐로 담아낸다.
<황금시대>가 그렇다고 우리 시대의 물질주의적 풍조를 비꼬거나 탄식하는 호흡으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십원짜리 동전 하나를 모티브로 고교생 남자와 여가수의 사랑을 잔잔한 멜로로 풀어낸 김성호 감독의 <페니 러버>나 철물점에 톱 사러 온 여성과 남자의 이야기를 공포 영화의 호흡으로 담은 김은경 감독의 <톱> 등은 화폐의 물질성에 집중하면서 관계의 매개체로서의 돈을 풋풋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취향에 따라선 헛웃음이 나올만한 단편도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황금시대>는 젊은 감독들의 재능과 치기가 반짝이는 평균 이상의 옴니버스다. 요즘 여러모로 왕따당하고 있는 시사 논객 진중권이 카메오로 등장했다(연기 잘 하시더군). 단편영화에 담긴 오달수, 임원희, 조은지 등의 연기도 신선하다. 9월 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