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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여름 궁전 주변의 금칠갑 분수들은 서막에 불과하다. 뾰뜨르 1세의 두번째 아내이자 그의 사후 여제가 된 예카째리나 1세가 18세기 중엽에 지었다는 이 궁전은 그야말로 '사치의 끝장'을 보여준다. 길이만 300미터가 넘는 저 건물 안에는 서로 다른 컨셉으로 꾸며진 55 개의 방이 있다. 모두 온갖 보석들로 치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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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들어서자마자 계단 벽을 장식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무늬와 골동품들이 궁전의 장난 아닌 위용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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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과 귀족들의 무도회가 열렸던 이 곳은 기둥이 온통 황금으로 치장돼 있다. 기둥 사이에는 대형 거울이 있어 연회장을 더욱 넓어 보이게 하는데, 춤을 추는 귀족들이 스스로를 비쳐보는 나르시즘의 도구로도 사용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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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안의 55개 방 가운데 밥 먹는 곳이다. 황금에 둘러싸여 먹으면 밥이 더 맛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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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후화>가 연상되는 복도다. 방방을 연결하는 이 황금 복도를 황제가 걸어가면 도미노처럼 문이 쫙쫙 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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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라 불리우는 보석으로 온 벽을 치장해 놓은 일명 '호박방'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6톤에 달하는 호박을 다 빼내갔는데, 종전 후 되찾으려 했으나 이미 호박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고. 결국 지난 2003년에 이르러 방이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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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과 보석도 너무 많다 보면 질리는 법인가. 파스텔 풍의 비교적 소박(?)한 장식이 오히려 신선해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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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시다. 예카째리나 아줌마. 사치와 화려함의 끝장을 후손에게 남겨주신 여제. 천한 것들이 우르르 몰려와 입을 쩍 벌리며 그녀의 존귀한 별장에 너저분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저승에서 한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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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와서 푸쉬킨의 동상을 여러 개 봤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은 거의 없다는 것. 대부분 저렇게 삐딱하게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고뇌에 찬 젊음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 삐딱함을 러시아인들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예 빼제르부르그 인근의 도시 하나를 그에게 헌정했다. 이름하여 푸쉬킨 시.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정 러시아를 초강대국으로 이끈 뾰뜨르 대제는 호화로움의 극단을 보여주는 여름 궁전을 만들고, 온갖 종류의 분수를 만들었다. 이제부터 볼 사진들은 분수와 황금, 그리고 보석의 향연, 눈이 부시다 못해 아주 질리고 마는 이곳을 돌아보고 난 뒤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자식들, 지랄 맞게 사치스러웠군. 그러니 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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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파스텔 풍의 여름 궁전은 멀리 서서 잡아도 카메라 프레임에 다 안들어올 정도로 옆으로 무진장 길다. 저기서 연일 황실과 귀족들의 사치 행각이 벌어졌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지만 시대는 가끔 이렇게 그 보편성마저 배타적으로 독점한다. 혁명은 독점된 욕망을 탈환해 박제로 만든 뒤 시민에게 헌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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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름다운 분수가 인공의 절경을 제공한다. 멀리 핀란드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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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의 이곳저곳은 황금칠을 한 신화의 주인공들이 장식하고 있다. 신화를 빌어 제정 러시아의 군국주의적 야망을 유감 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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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 앞의 분수를 맞은 편에서 바라본 풍경이 기가 막히다. 가운데 서 있는 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괴물의 입을 찢고 있다. 괴물이 누굴 상징하는지는 스웨덴을 제압하며 발트해를 차지한 제정 러시아의 역사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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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서정적인 분수도 물론 있다. 큐피트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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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뜨르 1세의 동상으로 기억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그가 신은 장화 뒤축의 열려진 부분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나는 엉덩이만 두 번 맞추고 포기하고 돌아섰다. 차라리 서낭당에 빌고 말지~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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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곳곳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색적인 분수다. 저 뒤켠은 바닥의 특정한 자갈을 밟으면 숲에서 물이 나온다고 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알고 봤더니 숲의 간이 건물에 숨은 누군가가 행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물 줄기를 뿌리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을 골려주며 돈을 벌다니, 진짜 재미있는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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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궁전 앞에서 바라본 핀란드 만의 모습이다. 수평선의 모습은 어딜가나 똑같다. 역사와 인간은 그 똑같은 풍경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저 바다의 지배권을 놓고 숱한 전투가 치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배권을 얻은 짜르는, 흐믓한 표정으로 여름 궁전에 누워 저 바다를 바라봤으리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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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기행 4. 빼쩨르부르그

별별 이야기 2007. 8. 20. 06:36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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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갔는데,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빼쩨르부르그를 보지 못한다면 단팔이 빠진 찐빵을 먹는 거나 다름 없다. 모스크바에서 밤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8시간. 우리는 침대칸을 예약했다. 낭만적인 침대 열차 여행은 그러나 약 6시간의 수면 후 악몽으로 급변했다. 앞서 달리던 열차가 노보그라드 인근에서 폭탄 테러로 보이는 탈선 사고를 당해 60여 명이 다치는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아연실색! 그 여파로 아침 8시로 예정된 열차 도착 시간은 오후 5시 40분으로 연장되더니, 다시 9시 반쯤에나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그렇다면 열차 안에서 장장 22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얘기. 우리를 안내한 선배는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듯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이럴 때 필요한 게 발상의 전환이다. "걱정 마세요. 우리 인생에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이것도 여행의 재미죠." 여행객으로서의 낙천성을 한껏 발휘했더니 그제서야 선배의 긴장한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선배의 11살 난 딸은 아랑곳 않고 신나 한다. 나는 긴급 공수한 맥주를 두 캔 들이키고 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케세라세라~ 잠만이 이 지루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필살기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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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동행하지 못한 또 다른 선배(사진 왼쪽 선배의 남편)가 모스크바에서 뉴스를 통해 상황을 전해 듣고는 핸드폰을 걸어 왔다. 그의 지령, "최대한 신속하게 식당칸으로 이동해 식량과 음료를 확보하라!" 열차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영양 보충부터 해놓으라는 얘기에, 우리는 서둘러 식당칸에 가 사람은 넷인데 6인분의 음식을 시켜 놓고 꾸역 꾸역 먹었다. 배 두드리며 다시 침대칸으로 드는데, 옆 칸에 있던 중국인들이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역시 대륙적 천하태평이다). 러시아어나 중국어로는 안통하고,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아는 중국인이 한 명이 있어 상황을 전해줬다. 그랬더니 배가 고픈데 먹을 걸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 호혜주의에 입각해,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선배가 그들과 식당칸까지 동행했는데, 이미 음식은 바닥이 난 상태. 두 시간 뒤 그들에게 겨우 빵 두개 씩이 배급됐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미리 음식을 챙겨둔 우리의 신속 정확한 행동에 새삼 뿌듯해진다. 과연 한민족의 생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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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사고 지역을 우회해 들어오느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달려온 장장 21시간의 대장정이 마침내 끝난 시각은 저녁 8시 30분. 당초 이날 아침부터 시내 관광을 하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대신 상 빼쩨르부르그의 살가운 저녁 풍경이 우리를 맞는다. 해군청 앞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이삭 성당이 야간 조명을 받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바티칸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의 규모와 맞먹는 이 성당을 짓는데만 40여년이 걸렸고 투입된 인력은 무려 50만 명이 넘는다 하는데, 그 이유는 신성한 건물인만큼 기계의 힘을  빌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기둥 하나의 무게만 수십톤에 달한다고 하니, 저거 짓다가 꽤 많은 사람의 목숨이 날아갔을 것 같다. 도대체 종교나 신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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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쩨르부르그의 중심가도인 네브스키 도로에 위치한 카잔 성당 역시 웅장함에 있어서는 이삭 성당에 뒤지지 않는다. 19세기 초 농노 출신 건축가 바로니킨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물들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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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태트리스 게임의 배경으로 유명한 피의 사원이다. 19세기 초 알렉산드르 2세가 인민주의자들인 나로드니키에게 암살 당한 자리에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세웠다고.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 제도를 폐지하는 등 나름대로 개혁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급진 개혁 세력들에겐 그 역시 걸림돌로 보였나 보다. 그는 폭탄 테러에 마부가 다치자 그를 부축하기 위해 나섰다가 재차 던져진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 제정 러시아의 짜르 가운데 그나마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서서히 끓어 오르는 혁명의 기운 앞에서 희생양이 된 셈이다. 그로부터 100년 후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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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러시아 황제 뾰뜨르 1세가 스웨덴을 제압하고 발트해의 해상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건설한 도시 빼쩨르부르그는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릴 정도로 운하가 많은 도시다. 북으로 핀란드만을 바라보고 있는 항구 도시인만큼, 도시 곳곳이 크고 작은 운하들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다만, 건물이 바로 운하와 면해 있는 베니스와 달리 운하 주변에 도로가 있다는 것이 다른 점. 운하를 오가는 관광 유람선에 탄 채 피의 사원을 바라보니, 딱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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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쩨르부르그의 고풍스러운 매력을 자랑하는 유럽풍 건물들에는 여전히 옛 소련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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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누. 빼쩨르부르그에는 저런 식의 기둥 장식이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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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를 오가는 유람선은 아주 낮은 다리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마치 4차원 세계로 진입하는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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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에르미타슈 박물관. 18세기 중엽 예카째리나 2세가 궁정 박물관으로 세웠다. 강대국으로 성장하려는 제정 러시아의 야심에 걸맞게 그 규모가 엄청나다. 건물 앞의 드넓은 광장은 짜르 군대의 연병장으로 쓰였다고. 안에 들어가보면 예카째리나가 의욕적으로 수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 램브란트와 모네, 마티스, 드가 등 서유럽 대가들의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기차 연착 사건으로 인해 건물 외관만 겨우 보고 발을 돌려야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만큼은 러시아는 초강국이다. 이곳 뿐 아니라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역시 러시아 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 반드시 들러보야할 곳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 여행 마지막 날 들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눈에 담아온 일랴 레핀과 미하일 브루벨 등 러시아 대가들의 걸작들이 준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술평론가 이주현씨가 낸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라는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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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르의 군대가 도열해 있었을 에르미타슈 앞 광장에서 이제는 젊은이들이 롤러 블레이드를 탄 채 하키를 즐기고 있다. 강력한 전제군주제는 당대에는 민중의 고역이었을 것이다. 황실과 귀족의 권위를 떠받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피를 흘렸을까. 그런데 그 절대주의 체제의 위용이 크면 클수록 후대의 시민들에게 이렇게 꽤 즐길만한 위락 장소를 제공하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그 역사의 아이러니, 다음 이야기에서 더욱 신물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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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끄레믈 관광을 마치고 모스크바의 인사동이라 할 수 있는 아르바뜨 거리에 갔다. 이곳저곳에 기념품 가게가 줄을 잇고, 악기를 들고 나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모으는 곳. 모스크바의 활기찬 이면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거리 한켠에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동상이 서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고 노래했던 그다. 그러나 아내가 프랑스 출신 미남 장교와 바람이 나자 그와 결투를 벌이다 총상을 입어 38살의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는 정말 삶이 자신을 속였을 때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않았을까? 아내와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이, '왜 좀 잘 좀 살지'하는 후대인들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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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뜨 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멋진 그리피티로 가득찬 벽을 볼 수 있다. 요절한 한국계 록커 빅토르 최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팬들이 그려 놓은 것이다. 그날 저녁 선배가 그의 노래를 들려줬다. 그의 '음울한 유목민적 비트'가 체제의 무게에 짓눌린 구 소련의 청년들에게 어떤 해방감을 안겨줬을까? (멀리 러시아 땅까지 와서 화보 촬영에 여념이 없는 한국인 모델이 땡볕에 털 옷을 입고 진을 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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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러시아 유학 시절 공부했던 모스크바 국립대학 본관의 모습이다. 저렇게 하늘을 향해 로켓포처럼 솟아 있는 건물 양식을 일컬어 스탈린 양식이라고 한단다. 이런 스탈린 양식의 건물이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 7개 정도가 된다. 스탈린은 무척이나 하늘을 찌르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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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깊게 찌르는 조형물은 여기에도 있다. 전승 기념관 입구에서 바라본 2차대전 전승 기념탑이다. 기념탑의 높이는 200미터는 족히 돼 보였는데, 전쟁 당시의 격전지 이름이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새겨져 있다. 나치를 상대로 수 천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치른 2차 대전의 승리는 러시아인들에겐 특히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임에 틀림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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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기념관 내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입상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용사들의 희생을 딛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자의 포효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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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기념관 내부에는 대전 당시의 격렬했던 전투를 미니어처와 그림을 합성해 재연해 놓은 별실들이 이어진다. 이곳은 나치의 봉쇄로 수백일간 기아와 공포에 허덕였던 상빼쩨르부르그(당시 레닌그라드)의 상황이 마치 현장에 직접 가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정교하게 연출돼 있다(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는데 감시인의 눈을 피해 몰래 찍었다^^). 꽁꽁 얼어 붙은 네바 강에서 물을 얻기 위해 나온 시민이 다리 밑에 숨어 나치의 공습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있는 모습이 처연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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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모스크바 관광에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다. 우선 러시아 권부의 상징 끄레믈(크렘린이라고도 하고 크레믈린이라고도 하는데, 둘다 영어식 표기라고 하니 여기선 러시아 발음을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이 당근 빠따 첫 코스다. 우선 이상한 것, 끄레믈 앞의 붉은 광장에 서니 하나도 붉지 않다. 그런데 왜 붉다고 할까? 눈을 들어 천천히 끄레믈을 살펴 보니 붉은 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붉은 벽 광장이라고 부르지. 왜 '붉은'이라는 말이 붙었는지 의문이 앞선다. 선배의 설명, "러시아 고어에서는 '붉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였어. 그래서 붉은 광장이라 부르는거지."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래서 당최 모르는 곳에 갔을 때는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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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물을 둘러싼 엄청나게 높은 붉은 성벽. 원래 지어질 당시에는 흰 회벽이었는데, 16세기 이반4세(이반뇌제라고도 부른다)가 붉은 벽돌의 바실리 성당을 건축할 무렵에 붉은 색 벽돌로 바꿨다. 이반 4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로도 유명한데, 바실리 성당의 건축가 2명이 영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자, 두 사람의 눈을 빼버렸다니, 참 끔찍한 인간이다. 그런데 러시아 역사에서는 이러한 끔찍한 군주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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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에는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시신을 볼 수 있다. 방부처리돼 대중에게 전시되는데, 아니러니하게도 그의 시신을 보겠다는 관광객들이 저렇게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룬다. 그래서 일찍 줄을 서지 않으면 오후 1시에 전시가 끝나버려 놓치기 일쑤다. 나 역시 첫날 레닌을 보러 나섰다가 실패하고 이튿날 2차 시도 끝에 겨우 그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뭐랄까, 누워 있는 밀랍 인형 같은 그의 모습을 보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세운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금의 상황을 그는 저승에서 개탄하고 있을까.  박제가 될 운명의 현실사회주의의 참담함을 그는 사후의 시신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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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이후 공산당 권력을 상징해온만큼, 끄레물 주변에는 소련의 건설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상징물들이 여기 저기에 산재해 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무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이 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불이 그들의 영혼이라 생각한걸까? 생긴 이래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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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입구의 한 켠에는 볼셰비키 혁명과 소련의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혁명 지도자들의 이름이 비석 위에 적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한창 자본주의화의 길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 인들이 이 비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건국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실패했소!" 이런걸까? 아니면 "건국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정신을 잊진 않겠소. 더 튼튼한 나라를 건설해 인민들이 평화롭게 잘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소." 이런 걸까. 순진하게도, 자칭타칭 좌파인 나는 자꾸 후자쪽으로 기운다. 섣부른 역사적 열패감이 아니라,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건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보수화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하다는 것. 저 결과론적 실패자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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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안으로 들어오면 엄청나게 큰 대포와 대포알이 관광객을 반긴다. 대포도 그렇거니와 대포를 받치고 있는 수레의 문양이 예술적이다. 옛날 사람들에겐 전쟁도 예술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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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에 화재가 났는데, 서둘러 끄다가 청동 종의 일부가 깨졌다고 한다. 깨진 부분과 그 조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게 이채롭다. 앞의 대포도 그렇고 종까지, 확실히 나라가 커서 그런지 뭐든 큼직큼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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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 내부에 위치한 우스팬스키(성모승천 성당). 16세기 이반 3세가 이탈리아 건축가 피오 라반디를 초청해 짓게 했다. 피오 라반디가 러시아 기존 건축물들을 연구한 끝에 이후 러시아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버섯 모양 돔(꾸뽈)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바실리 성당 건축가들의 눈을 뺀 이야기를 했나? 이반 3세 역시 피오 라반디가 건축을 끝내자 아예 그를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게 이들의 전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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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팬스키 내부의 벽은 온통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진, 이른바 '이콘'들로 도배돼 있다. 이콘은 러시아 교회 미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느 성당에 가도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스팬스키를 구경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군중들이 광장에 가득 모여 있다. 뭔가 해서 봤더니, 끄레믈 근위병들의 사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여름 한철에만 기획되는 이 행사는 예고 없이 치러진다고 하는데, 앞서 본 레닌의 축복이었을까? 좀처럼 만나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된 행운을 잡은 셈이니, 급히 카메라를 꺼내 군중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찍었다. 요건 특별히 동영상으로 준비했으니, 즐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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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을 나서면 그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 다음 코스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러시아의 상징답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서 있다. 왠지 이 성당은 눈이 잔뜩 쌓였을 때 보는 게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 놓고 두 눈을 잃은 건축가들의 억울한 마음이 짠하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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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을 나서면 동양의 십이간지를 연상케 하는 동물들을 그려 놓은 이상한 바닥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모스크바의 중심점인 가운데 서서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래나. 주변에 두 분의 할머니가 관광객들이 던지는 동전을 열심히 줍고 있었다. 할머니 왈, "이왕이면 큰 돈을 던지시우, 그래야 소원이 이루어진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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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레믈을 둘러 본 뒤, 인근의 노보제비치 수도원을 방문했다. 이 수도원은 1524년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3세가 폴란드 령이었던 스몰렌스크를 탈환하고 그 기념으로 세웠다. 전쟁 중에는 요새로 사용했다고. 귀족들의 자녀나 여성들의 수도원으로 쓰여, 노보제비치라는 이름 역시 'New Woman'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뾰뜨르 대제가 자신과 권력 투쟁을 벌였던 누나 소피아와 첫째 부인 에브도키야를 유폐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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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제비치 수도원 옆에는 유명 인사들의 거대한 무덤이 있다.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 위에 고인의 흉상을 배치한 형식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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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후르쉬초프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그의 비석 앞에 놓인 꽃들이 말하는 것 같다. '화무십일홍'이라고.

끄레믈과 노보제비치 수도원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빼 놓은 게 있다. 끄레믈에 있는 무기고와 다이아몬드 박물관(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 눈에만 담아 왔다).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 시대에 황실이 사용하던 각종 의상과 장식품, 식기와 무기, 보석류 들이 대규모로 전시돼 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엄청난 물량의 다이아몬드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 정도. 농노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사치의 끝장을 보았던 짜르 황실의 만행(?)은 나중에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빼쩨르부르그의 여름 궁전과 예카째리나 궁전을 소개할 때 더 자세하게 말하고자 한다. 어쨌든, 요거 하나만 기억하자. 볼셰비키 혁명이 괜히 일어났던 게 아니라는 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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