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첫 본선 무대를 생중계한 '슈퍼스타K 2'는 얄궂게도 그 벤치마킹 대상인 온스타일의 '아메리칸 아이돌'이 방영된 직후에 시작됐다. 물론 '슈퍼스타 K'는 그에 앞서 무려 1시간이 넘도록 지난한 사전 제작 영상을 방영하면서 분위기를 돋웠지만, 때마침 방송된 '아메리칸 아이돌'은 좀 잘나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도지는 한국 방송의 고질병, 즉 '하염없이 뜸들이기'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게 한 더 없이 좋은 호재였다.

어쨌든,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던 중 어느 심사위원의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는 레코딩 아티스트를 찾고 있는데, 당신은 그에 부합한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프로그램 컨셉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그들은 일단 '오디오'에 집중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다. 당연지사다. 그들은 가수를 뽑는다. 스타성이라는 모호함에 마취돼 어설픈 스타 흉내를 내는 걸 특히 가장 까칠한 심사위원 사이먼은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런 자신감도 읽힌다. "넌 일단 노래만 기가 막히게 잘해라. 스타는 우리가 만들어준다." (슈퍼스타 K와 비교되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어느 심사위원도 참가자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살을 빼라는 식의 주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 이승철은 앞선 방송분에서 후보자를 향해 "스타라는 계급장은 국민이 달아주는 것이지 당신이 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앞서 이번 시즌의 예심 심사위원으로 나온 가수 김태우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들은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 들어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그가 스타 뮤지션이었으니 망정이지 내가 이렇게 말했다면 대중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당장 돌 날아왔을 얘기다.) 두 말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기성가수들은 "스타란, 노래만 잘한다는 이유로 들어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대중이 달아주는 계급장"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그게 냉혹한 현실이라는 얘기다.

언뜻 스타성의 근원을 문화 소비자, 즉 대중의 취향 탓으로 돌리는 이 발언은 상황 논리적으로는 옳은 듯하지만 발언의 주체가 가진 영향력을 감안하면 무책임하다. 많은 경우, 대중 문화 아이콘은 기획자의 전략이 대중의 잠재적 기호와 접점을 만들어내면서 스타화된다. 지금 한국의 대중가요가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일색이 된 것은, 대중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런 기획 상품만 각광받을 수 있도록 재능의 순환 구조가 폐쇄돼 있기 때문이다.

독점적 영향력을 지닌 거대 기획사와 방송국은 암묵적 공조에 의해 그런 폐쇄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고정시키고, 그들이 믿는 스타성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돼 있다. 도대체가 '다른' 재능이 치고 들어갈 틈새가 없을 때, 대중은 제시된 트렌드를 어쩔 수 없는 문화적 대세로 받아들인다. 좋아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런 와중에 굳이 '아메리칸 아이돌'의 짝퉁이다, 학예회다 하는 비난을 들으면서 시작된 '슈퍼스타 K'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지금의 대중 문화 지형에서도 뭔가 다른 재능이 발굴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폐쇄된 재능의 순환구조에 숨통을 터 주는 것, 즉 틈새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SM이나 JYP 등의 기획사 오디션을 그대로 중계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스타성의 관성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지형도 안에서도 프로듀서의 심미안을 동원해 새로운 재능을 발굴해내는 것,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던 천편일률적인 아이돌형 가수가 아닌, 그러니까 맞춤형의 가능성이 아닌, 돌출형의 잠재력을 찾아내 격려하고 제시하는 것. 그것이 '슈퍼스타 K'가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벤치마킹했어야 할 진정한 핵심인 것이다.

(예상대로 시청률 자화자찬으로 시작된) 금요일의 첫 본선무대는 그러나, 몇몇 후보자들부터 프로그램 제목 안에 포함된 '스타'라는 거대한 착시현상에 매몰돼 있음을 증명했다. 무대 초반, '섹시 퍼포먼스'에 집중하느라 음정은 애저녁에 저당잡힌 민망한 무대가 이어졌고, 심사위원 이승철은 그 가운데 한 명에게 95점을 안겼다.

대관절, 오로지 가창력으로 승부해 그 자리에까지 오른 이승철은, 젊은 재능들 앞에 어떤 잣대를 심사 기준으로 들이대고 있는 건지 의아해지는 대목이었다. 거기에서 "현실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어떤 자조가 읽혔다면 오버일까. 그에게서 "넌 노래만 잘해라, 스타는 우리가 만들어준다"는 자신감까진 기대할 수 없어도 진짜 음악인이라면 당연시되지만 불합리한 현실에 반기를 들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사위원들의 심사권보다 시청자 문자투표의 비중을 훨씬 크게 할애한 심사제도는, 노래보다 어설픈 춤 실력으로 승부를 걸려 했던 두 후보를 탈락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이 오히려 심사위원보다 더 진취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아이돌 붐에 식상함을 느낀 시청자들은, 뭔가 새롭게 반짝이는 가수, 퍼포머가 아닌 아티스트를 본능적으로 갈구하고 있음을 암시한 결과였다.

물론 문자투표가 갖는 부작용도 있다. 적극 투표자들의 세대와 성별적 특성으로 인해 투표 결과가 재능보다 인상과 외모에 집중할 것이라는 가설은, 여성 후보만 세 명이 줄줄이 탈락되는 결과를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러다가, 맨 나중엔 '훈훈하게 생긴' 남자 후보만 남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본선 무대의 결과는 비교적 타당했다고 본다. 역설적이게도, 대중과 국민을 앞세워 자주 재능의 시장성을 재단하려는 심사위원들의 게으른 타성에 시청자들이 반기를 든 셈이니, 이번에야말로 그들이 대중과 국민을 단단히 잘못 헤아리고 있다는 게 입증됐으면 좋겠다. 기획사라는 관성화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재능과 대중의 직거래를 통한 제대로 된 접점을 만들어낸다면, 음악이 아닌 리비도 자극제만 넘쳐나는 한국 대중가요계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트위터: @cinemagora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