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 <하우스>의 그레고리 하우스. 이 셋의 공통점은? 내가 케이블TV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출연자 또는 주인공이라는 것. 또 하나, 고든 램지는 요리전문가, 사이먼 코웰은 음악 프로듀서이자 오디션 심사위원, 그레고리 하우스는 극중 진단 전문의로, 각각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까칠'하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런데도 모두 매력적이다. 무엇이 이들 까칠남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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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옥의 주방'이라는 뜻의 프로그램 제목대로 그야말로 '저승사자'인양 구는 고든 램지. 이 양반은 입에 "FUCK"을 달고 산다.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단 한명의 지존 쉐프를 뽑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방의 서슬퍼런 독재자 램지의 눈 밖에 난 참가자들은 가차 없는 욕설 세례를 감수해야 한다. "꺼져 버려!" "이런 쓰레기를 먹으라고?" "누군가 고든 램지 어록을 만든다면, 그건 곧바로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모욕할 수 있는 어휘 사전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참가자들은, 미션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램지의 온갖 인신공격성 모욕을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곧잘 파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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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은 어떤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참가자들을 향한 그의 독설은 거침이 없다. "내가 들어본 최악의 노래였어요." "정말 형편없었어요." "끔찍하다구요." 등등. 스타를 향한 꿈을 품고 딴에는 노래 좀 한다고 '착각'한 친구들은 그의 과감한 찬물 껴얹기에 간혹, "FUCK YOU"로 화답한다.

그의 독설은 시청자들을 향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자신의 고향 영국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의 원조격인 '브리티시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바 있는 그는, 간혹 그가 지지하는 후보가 시청자 투표 결과로 탈락할 경우, "미국인들의 취향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어요."라며 비꼰다. 그의 끝 없는 냉소는, 동료 심사위원들의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나 원래 이런 놈이야" 하듯 사이먼의 철면 독설은 이제 <아메리칸 아이돌>을 지탱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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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미드 <하우스>에서의 하우스 박사는 괴팍하다. 환자들에게 막말을 잘하고, 팀내의 의사들에게 깐죽대거나, 때로는 이간질까지 한다. 이 사람은, 까칠하다기보다 얄미운 스타일이다. "나를 한번 이겨봐, 이 멍청이들아"라고 말하듯 후배 의사들의 약을 바짝바짝 올리는 데 선수다. 게다가 그는, 예전에 입은 다리 부상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산다. 그것 때문에, 그의 품성을 싫어한 한 경찰의 집요한 함정에 빠져 쇠고랑까지 찰 뻔 했지만, 아무튼 그는 상식적인 눈높이에서 봤을 때 의사로선 자격미달인 구석이 많다.

세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야말로 '꼰대'다.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속한 직장에 저런 상사가 한 명 있다고 가정해 보자. 틀림 없이 앞에선 꼼짝 못해도 뒤에선 궁시렁대는 부하 직원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에게 이들은 미워할 수 없는 것을 넘어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르는 캐릭터로 비쳐진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이 평가에는 가혹하되, 반드시 필요한 칭찬에까지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자신의 영역에서는 존경을 받을만큼의 실력자들이기 때문이다.

고든 램지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참가자들의 수행이 마음에 들었을 때는 "정말 훌륭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평소 실컷 욕만 들어 먹었던 참가자들에게 그의 이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칭찬이 희소하므로, 그 칭찬의 진심은 곧바로 그 대상자들의 자긍심으로 이어진다. 사이먼 코웰도 마찬가지다. 열 마디의 독설이 있지만, 진짜 실력파 참가자들에겐 "지금까지 본 최고의 무대였어요."라는 희소한 찬사를 보낸다. 그러므로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찬사만큼은, 다른 어떤 심사위원들의 그것보다 더 큰 보상으로 여겨진다.

하우스는, 왠만해선 칭찬하지 않는 인간이지만, 그건 어쩌면 사람의 생명을 다뤄야 하는 진단의라는 직업적 특수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늘 결과로 그 자신의 존재 증명을 수행한다. 환자의 증상을 실마리로, 그의 생활 환경까지 면밀히 추적해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는, 그의 놀라운 관찰력은 동료 의사들을 주눅들게 함과 동시에 자극한다. 한 번은 다리 통증 때문에 약간의 환각 작용이 뒤따르는 진통제를 먹었다가 오진을 할 뻔한 그는, 그 진통제를 먹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환자의 불행을 야기한다면, 그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 게 의사가 할 일이라는 믿음을 실천한 셈이다. 이러니, 아무리 괴팍하고 얄미운들, 하우스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인물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역에 대한 철두철미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혹하되 제대로 된 물건을 알아볼 줄 아는 눈, 관계를 걱정해 입에 발린 말로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는 원칙. 이런 리더십이라면, 닮고 싶은 게 당연하다. 물론, 이런 이들은 틀림없이 많이 외롭겠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늘 악역이 필요하고, 그 악역을 맡은 자들은 그래서 슬프지만, 그 슬픔 이상의 무언가를 알고 있는 자들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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