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한류 스타, 조혜련

TV 이야기 2009. 11. 18. 23:18 Posted by cinemAgora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 연예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국 가수들의 외국 진출이 빈번해지는 걸로 봐선 음악이야말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것 같다. 연기라면 어떨까? 일단 그 나라 말이 돼야 한다. <지아이조>의 이병헌이나 <닌자 어쌔신>의 정지훈을 보면, 영어 연기가 꽤 그럴 듯 하다. 이들을 보면 타국어 연기도 노력을 통해 취득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자연스레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듣는다.

한데 코미디라면, 얘기가 다르다. 웃음의 코드야말로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낄낄 대며 웃으며 보는 영화를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썰렁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터, 드라마든 영화든, 리얼리티쇼든 죄다 수입해서 틀어도 코미디만큼은 어지간해도 수입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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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렇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 성과를 보여준 이가 있으니, 바로 조혜련이다. 조혜련이 일본 쇼 프로그램에 나와 일본인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걸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한국인이 타국어로 그 나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혜련의 초인적, 국제적 유머 감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조혜련은 세 가지 핸디캡을 동시에 극복하며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핸디캡이란 그녀가 여성이고 외국인이며, 결정적으로 솔로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케와 츠코미(만담에서 유래된 일본의 독특한 코미디 공연 방식으로, 한 사람은 바보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구박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생산한다.)가 짝을 이루는 팀 코미디가 대세인 일본에서 조혜련은 '나홀로 코미디'로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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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간사이 출신의 아이돌 그룹 '칸자니 8'이 진행하는 쇼 프로그램에 조혜련이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한국의 전통 음식을 직접 요리해 칸자니 멤버들에게 먹이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진행자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개그 패턴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도무지 내숭과는 벽을 쌓은 듯 연타로 이어지는 그녀의 우악스러운 들이댐이 일본인들에겐 꽤 새롭게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적인 열정과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일본인들이 미처 개발하지 못한 틈새의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그들의 문화 안으로 동화되는 게 아니라 문화 밖의 이질성을 무기 삼아 시침 뚝 떼고 전진함으로써 참신한 재미를 창출하는 게, 그녀의 방식이자 성공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쉴새 없이 오가는 강행군을 소화하면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분야에서 가장 걸출한 활동을 펼치며 두 나라의 문화적 간극에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녀의 업적을, 한국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일본어로 일본인들을 웃기는 모습을 보는 게 아직도 불편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한국 연예계 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하고 있는 이 불굴의 개그우먼이 아이돌 그룹의 활동상에 밀려 왠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혜련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스타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부는 상이라도 줘야 한다.

덧붙임) 일산에 사는 그녀를,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옆에서 러닝 머신을 하고 있던 조혜련이 트레이너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선명하다. "나는 서너 시간을 뛰어도 지치질 않아요. 좀 지쳐 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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