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다의 출연자 이 모씨가 내뱉은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이 일파만파다. 이 씨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야말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이미 사과문을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명을 검색하면 그 뒤로 "퇴학" "가슴 성형" "남친" 등 신상과 관련한 모욕성 연관 검색어들이 줄줄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제 2의 '개똥녀' 사건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냉정하게 말해, 방송 당시의 발언 그 자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여기에 승패의 개념을 연상시키는 "루저"라는 어휘를 쓴 것은 누가 뭐라도 적절하지 않았다. 사과문의 내용대로 발언자가 작가가 써준 대본을 그대로 읽었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사리분별이 잘 안됐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연예인도 아닌 일반 출연자의 미숙함이나 정치하지 못한 생각이, 곧 그 당사자에 대한 폭력에 가까운 인신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톡 까놓고 말해 어디 미팅 자리에 나갔다가 앞자리에 앉은 여성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씁쓸하게 냉소하고 넘어갈 일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한다. "난 다른 건 몰라도 180 이하는 용서가 안돼"라고 말하는 여성들도 자주 봤다. 마치 남자들이 "난 다른 건 몰라도 몸매가 딸리는 애들은 용서가 안돼" 하듯, 그 또래 젊은이들에게 이성의 용모에 대한 품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여성들의 몸과 외모를 품평하는 게 더 익숙하고 일상화돼 있다.

한데, 한 여대생의 생각이 다소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해 전파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당사자를 화형대에 올려야 할 마녀 취급할 수 있냐는 얘기다. 이 대목에선 괜스레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들었던 '시범 케이스'라는 말이 생각난다.

한번 더 냉정해지면, 이 사태에 대한 기본 책임은 전적으로 '미수다'의 제작진에 있다. 출연자의 사과문에 적혀 있는 정황이 맞다면, 우선 그런 대본을 써준 작가들의 인문적 수준이 문제이며, 설령 발언자의 자의에 의한 발언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적절히 걸러내지 않고 버젓이 자막까지 달아 내보낸 피디의 불감증이 문제인 것이다. 이미 제작진이 교체됐다 할지라도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가 시청률과 선정성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못해 적절과 부적절의 개념을 상실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미수다'가 과감하게 선을 넘었던 게 이번만은 아니다. 고정 출연자들의 몸을 서로 부위별로 품평하게 만들며 특정 부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뜨거운 장면까지 연출한 바 있다. 이건 명백히 여성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그럼에도 유독 '루저' 발언이 일파만파로 도마 위에 오르는 현상은,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컨셉트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좀더 개방적이고 쿨한 느낌의 외국 여성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히고 줄줄이 앉힌 뒤, 한국 남자들에 대해 말하게 함으로써, 한국 남자들의 이른바 왜소 컴플렉스를 '해소' 시켜왔던 그 프로그램이, 해소라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거꾸로 '자극'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데 대한 충격적 배신감이, 지금 이른바 루저들의 반란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이미 KBS와 미수다에 대한 손해배상 신청이 10건 이상 접수됐다고 한다. 대부분 루저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였다. 내가 보기엔 정작 가장 먼저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할 이는 발언 당사자인 이 모씨다. 발언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과는 별도로, 이 사태로 가장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실명과 신상, 얼굴까지 노출됐으니, 미수다 제작진의 어이 없는 실수로 그의 인격과 명예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제작진으로선, 두고 두고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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