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감독 박찬옥
주연 서우, 이선균, 심이영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이 7년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답게 꾹꾹 눌러 쌓아온 내공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여정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이 듯 이 영화는 파주라는 안개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의지로는 어쩌지 못하는 삶의 비정형성과 그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불안과 위협을 조용히 웅변한다. 안개에 휩싸여 헤매는 인물들의 엇갈린 사랑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더욱 슬프다. 여배우 서우의 예정된 재발견.
<여행자>
감독 우니 르콩트
주연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
어린 시절에 프랑스에 입양간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그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작품인만큼, 동정의 시선을 유도하지 않고, 오로지 9살 소녀의 시선으로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갈등과 성숙의 과정을 담백한 연출로 묘사한다. 제목처럼, 인생이란 이별과 또 다른 만남이 교차하는 여행이다. 어느 버려진 고야의 입양기를 다루고 있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보편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진희 역을 맡은 아역배우 김새론의 연기는 소름이 끼쳐올 정도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타란티노라는 인간은 관객의 시선을 시종 일관 잡아 끄는 데는 선수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히틀러 암살 작전에 연루된 인물들의 사연을 겹겹이 쌓으면서 음모와 돌발적 우연의 파노라마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전쟁영화인 듯 하지만 사실은 서부극적인 대결의 시퀀스가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든다. 스파게티 웨스턴 <빅 건다운>에 쓰였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라든가 <캣 피플>의 주제가였던 데이빗 보위의 "Putting Out The Fire" 등 귀에 익은 음악들을 독창적으로 재활용하는 대목은 그의 영화광적 면모를 확인시켜 준다.
<신부의 수상한 여행 가방>
감독 기시타니 고로
주연 우에노 주리, 키무라 요시노
뻔할 뻔한 소동극을 독창적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이 독특한 여성 버디 무비는, 시종일관 낄낄 거리는 웃음을 선사하다가 그윽한 감동으로 마무리 짓는다. 배우 출신 감독 기시타니 고로의 연출에 묻어나는 엽기발랄한 재치 뿐 아니라 <노다메 칸타빌레>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만화적 매력을 발산하는 우에노 주리와 <사쿠란> 등에서 호연을 펼친 바 있는 키무라 요시노의 연기 호흡은 압권이다. 왠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