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윙'과 '굿모닝 프레지던트'

영화 이야기 2009. 10. 26. 08:43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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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TV 시리즈 가운데 웨스트윙이라는 작품이 있다. 드물게 정치를 소재로 삼았지만 시즌 7까지 방영될 정도로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활약상이 박진감 넘치는 호흡으로 펼쳐진다는 점 말고도, 이 시리즈의 인기 배경은 더 있다.

마틴 쉰이 연기하는 이 시리즈의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으로 설정돼 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석학이자, 인자하고도 단호한 면모를 가진 멋진 대통령이다. 그를 둘러싼 젊은 참모들도 정의감에 똘똘 뭉쳐 있다. 이들은 그 어떤 정치적 거래도 거부하며, 그들이 옳다고 믿는 진보적인 정책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뛴다. 아마도 이런 설정 자체가 미국의 시청자들에게 가상의 만족감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그 성공의 배경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클린턴 집권 말기에 시작된 이 시리즈가 공화당 정권인 부시의 임기 때까지 줄곧 인기를 얻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어쩌면 그들의 현실이 거꾸로 어떤 이상향적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동경을 부추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미국인들은 공화당 집권 8년에 종지부를 찍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백악관의 주인 자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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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정치 사회적 지형 안에서 바라보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아이러니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인간적이고도 행복한 세 명의 대통령을 설정한다. 이런 설정의 전제는 비교적 명확하다. 영화가 제시하는 대통령 상을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으며, 무엇보다 지금도 그렇다는 인식을 제작진과 관객이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관객들이 이 가상의 대통령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이순재는 복권에 당첨돼 <거침없이 하이킥>야동 순재스러운고민에 휩싸이고, 후임 대통령 장동건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대통령의 신장 이식을 요구하는 젊은이(박해일)의 사연에 당혹한다. 21세기의 신사임당으로 추앙받는 여성 대통령 고두심은 영부인이 아닌 영부군(임하룡)과 이혼할지 여부를 놓고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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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이렇게 이들이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갈등 상황을 펼쳐 놓고 특유의 웃음을 뽑아낸다. 동시에 그 갈등의 상황에서 이들이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중 대사를 빌자면 정치는 어차피 쇼. 그러나 그 쇼 안에 진정성을 담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청와대 조리장이다. 그가 대통령 집무실도 아닌 주방에서 대통령과 소주 한잔 나누거나 멸치를 다듬으며 무심결에 내뱉는 한마디는, 보통 사람의 상식을 웅변한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의 대통령에게 뭔가 대단히 초월적인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상식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이런 메시지는 그만큼 보통 사람의 상식이 정치적 판단의 준거가 되지 못했음을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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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영화는 현 정부의 어떤 측면을 은근히 비꼬는 것 같아 보였다. 극중 새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을 연상시킨다)출신 대통령으로 설정돼 있는 장동건의 대사에 꽤 풍자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게 세가지요. 하나는 주사, 하나는 우리 아들이 질문 있다고 할 때, 그리고 또 하나는 촛불 집회요.” “서민 친화가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면 되지, 꼭 시장 가서 떡볶이 먹어야 되는 건가?” 극중 통일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 설정돼 있는 고두심도 한마디 보탠다. “세금만 올리자 하면 좌파 정권이래요.”

앞서 말했듯, <웨스트윙>이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인기를 끈 건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늘 현실에서 답답증을 느낄 때 그 반대 상황을 가정해 놓고 즐기기를 좋아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도 그런 점에선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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