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와 함께 간다' 단상

영화 이야기 2009. 10. 25. 22:0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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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초라던가? 부산국제영화제 역대 최단 기록 예매 기록을 세웠다는 보도를 접할 때부터, 왠지 이 호들갑이 극장 흥행으로 직결되지는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과연, 첫 시사 때부터 관객들의 한숨이, 과장을 좀 섞어 극장 바깥까지 흘러 나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개봉 첫 주말 성적은 13만여 명.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 기무라 타쿠야까지 한미일 쓰리 스타가 떴는데 이 정도면 한참 저조한 성적이다. 둘째 주말에는 급전직하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네티즌 평점은 바닥을 기고 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 이후에 받고 있는 홀대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스타 파워로 형성된 영화 외적인 기대감과 영화가 가진 알맹이 사이의 간극이 클 때, 영화 자체의 작품성을 떠나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위화감의 표현이다.

어쨌든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관객에게 여러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그런 점에선 분명한 미덕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감히 '요구'한다는 게 흥행적으로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화두가 개입의 여백을 넉넉히 남기고 있는 게 일견 마음에 들었지만, 솔직히 그 화두를 떠안는 게 버겁게 느껴졌다. 내 그릇 속에 담기에 너무 거대한 화두였기 때문이다.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 아름다움의 근원으로서의 고통, 그리고 구원을 향한 탐색으로서의 사도 마조히즘적 몸부림. 꽤나 형이상학적인 주제 의식을 트란 안홍은 과잉된 이미지의 나열 속에 제시한다. 누아르적 얼개의 이야기는 그저 핑계로 활용될 뿐, 시침 뚝 떼고 신약 성서의 현대판 재연으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해석의 여지를 많이, 아주 많이 남기는 영화다.

육체와 고통, 그리고 구원의 모티브를 신약 성서로부터 가져온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이되, 나는 이런 관념론적 화두가 현대의 관객들에게 어떤 함의로 포섭될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이것을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교묘한 냉소라고 본다면 속 편하겠으나, 불행히도 그렇게까지 해석의 수고를 하고 싶을만큼 둔중한 정서적 충격을 얻진 못했다.

아니, 이 영화가 제시한 그런 고민을 공유하기에 사는 게 너무 피곤하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아마도 나 말고 다른 많은 관객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가치를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 실존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고픈 누군가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터이나, 그 누군가가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니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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