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외계인, 어제와 오늘

영화 이야기 2009. 10. 22. 11:14 Posted by cinemAgora

SF 영화들을 보다보면, 외계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구인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요. 영화가 외계인들을 묘사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 변화 과정을 살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외계인, 전 한번도 본 적은 없습니니만, 특히 할리우드 SF 영화 속에는 참 자주 등장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말할 것도 없이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현실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적을 제시하게 되면 여러모로 논쟁의 여지가 많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상의 적을 상정해서 주인공이 이들과 싸우는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이죠. 그런 점에선 가장 편한 게,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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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외계인이라고 부르면, 뭔가 적응을 잘 못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화 속에서의 외계인은 주로 무시무시하게 나옵니다. 전통적인 SF 영화 속에서의 외계인은, 물론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는 강력한 외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005년에 개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2005)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 쓰여졌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전통적인 외계인상을 보여주죠. 말 그대로 지구를 다짜고짜 침공해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위협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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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방식이나 설정이 조금씩 다릅니다만, 지구인의 적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영화들이 일맥상통한 외계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생김새부터 파충류라든가, 벌레 따위를 연상시키도록 흉측하게 묘사할 때가 많은데요. SF영화사의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이라든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했던 <프레데터>(1987)같은 영화들은 외계인을 극도의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합니다. 지난 1997년에 개봉했던 <스타쉽 트루퍼스>(1997) 같은 영화들은 외계인들을 거대한 벌레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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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어떻게 생긴지 모르니까 어떻게 묘사하든 상관은 없을테지만, 외계인들이 이렇게 흉측하게만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요? 할리우드 SF 영화 속의 외계인은 당대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드러난 적이 누구냐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냉전기에는 주로 소련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최근에는 불법 이민자나 미국 사회 내부의 위협 세력 또는 테러 집단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 만들어진 <우주 전쟁> 같은 영화도 비교적 분명히 테러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하고 있죠. 또 윌 스미스가 주연했던 <맨 인 블랙>(1997) 같은 영화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암약해서 마치 지구인인 척 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건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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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영화 속에서는 외계인들이 반드시 악한 세력으로만 그려지는 건 아닙니다. 최근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바 있는 <트랜스포머>라는 영화 속에서는 외계인이 선과 악, 두 편으로 나뉘어 있죠. 지구인의 편인 오토봇족이 지구를 위협하는 디셉티콘족에 맞서 싸운다는 설정인데요. 사실 이 영화 속의 외계인은 변신 로봇이나 스포츠카에 대한 소년적, 또는 남성적 로망을 그대로 반영한 일종의 피조물과도 같은 캐릭터들이죠. 그러니까 마치 외계인이 진짜로 존재하는 듯한 사실성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가상성을 극대화해서 마치 어릴 적에 왼쪽 손에 우리 편, 오른쪽 손에 나쁜 편 로봇을 들고 놀이하듯, 그런 대결 구도를 만들어 놓고 즐기도록 해놓은 영화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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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나오는 또 한편의 영화 가운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했던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작품이 있었죠. 이 영화 속의 외계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메시아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지구를 인간한테 맡겨 놨더니 환경만 파괴하고 자격이 없다, 그래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박멸하겠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걸로 묘사가 되는데요. 외계인을 통해 지구의 문제점을 들여다 보려는 시도는 참 좋았는데, 영화는 너무 지루하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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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얼마 전에 또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 돌아 돌아 왔습니다. 바로 <디스트릭트 9>이라는 작품인데요. <반지의 제왕>으로 잘 알려진 피터 잭슨 감독이 제작을 맡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젊은 감독인 닐 블룸캠프가 연출을 맡은 SF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특이하게도 지금까지의 SF 영화사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본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혁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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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등장하는데요. 당국은 이곳에 표류하게 된 외계인들을 따로 격리 수용하게 되고, 이들은 디스트릭트 9이라는 곳에 20년간 모여 살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이곳은 거대한 슬럼가로 변하고 각종 범죄의 온상처럼 변하는데요. 그래서 당국은 이들을 또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작전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개 작전에 나섰던 비커스라는 인물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점점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거꾸로 당국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외계인과 손을 잡고 싸우게 된다는 게 기둥 줄거립니다.

이 영화 속의 외계인은 팔레스타인과 같이 국제 분쟁에 휘둘린 난민이나, 슬럼가의 빈민 등 주류 사회로부터 밀려난 소외  집단을 상징하고 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이런 설정을 통해서 계층간, 인종간 갈등이라든가 그 이면에 숨은 군수산업의 논리 등을 냉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SF 영화들이 외계인을 적 아니면 친구로, 그러니까 인간의 시점에서 대상화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거꾸로 인간을 대상화하면서, 여러 가지 현실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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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는 아주 인상적인 외계인의 시점 쇼트가 등장하는데요. 전통적인 영화에서 외계인의 시점 쇼트는 그에게 곧 공격받을 대상인 인간에게 다가올 위협을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트럭에 갇힌 외계인 크리스토퍼의 시점 쇼트는 오히려 지구인을 위협 세력으로 바라보고 있죠. 그러다 보니 관객은 프레데터를 연상시키는 흉측한 몰골의 외계인의 처지에 감정 이입하게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외계인의 강력한 무기에 잔혹하게 펑펑 살점이 날리며 죽어가는 지구인들을 바라보며, 기묘한 쾌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죠. 게다가 시침 뚝 떼고, 뉴스릴과 인터뷰 화면을 뒤섞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혼용함으로써, 이 가상의 설정이 지닌 현실적 함의와 시사점을 강조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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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저예산(SF 영화로서 제작비가 3천만 달러면 초저예산입니다.)의 한계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뚫고 간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나 문명 비판이라는 SF 장르의 전통적 소재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로보캅>에 필적하는 혁신적 작품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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