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2009] '두꺼비기름' 낯선 전형성

영화 이야기 2009. 10. 14. 10:51 Posted by cinemAgora

영화 보는 취향이란 게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어떤 이에게는 걸작이 어떤 이에게는 졸작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수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 갔다가 일본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피스톨 오페라>라는 괴작을 본 적이 있었는데, 상영이 시작 되자 관객들이 듬성듬성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들과 합류하기를 바랐지만, 어쨌든 꾹 참고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는데, 나중에는 처음 관객의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아 있는 관객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나와 함께 영화를 봤던 이동진 기자도 상기된 표정으로 걸작이야를 연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는 그와 생각이 정반대였다.

그런데 어제는 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일본의 국민 배우로 일컬어지는 야쿠쇼 코지가 감독 데뷔했다고 해서 호기심을 못참고 봤던 <두꺼비 기름>,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지인들에게 야쿠쇼 코지가 이마무라 쇼헤이 같은 거장들과 함께 영화를 찍더니 스스로 거장이 됐네하며 내 극찬에 동조를 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뜨뜨미지근했다. “뭐가 걸작이야? 그저 그렇더만.” “에이 이 사람들이 영화 보는 눈이 없어하며 이후에 만난 다른 이들에게도 확인을 거듭했다. 대동소이한 반응들. 부산에 내려와 있는 3M흥업의 김경찬 피디 왈, “영화가 너무 전형적이더군요. 일본적인 전형성이랄까.”

이렇게 나와 천양지차의 반응들을 접하고 나니, 나는 비겁하게도 이 영화를 과연 걸작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슬쩍 회의가 들면서도, 그래도 감독으로서 야쿠쇼 코지가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저력을 확인한 기회였음은 분명하다고 스스로의 관점을 정당화했다. 물론 이것을 야쿠쇼 코지적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그의 다음 작품들을 기다려봐야 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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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다. <두꺼비 기름>은 과연 전형성, 그러니까 돈의 노예로 살아온 한 남자가 소원했던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 다시 삶의 희망을 찾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휴먼 드라마적 전형성을 보여준다.
부연하자면, <두꺼비 기름>의 중심 사건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이 남긴 생전의 관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 사람은 아들의 절친한 친구이자 소년원에서 막 나온 사부. 또 한 사람은 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여자 친구 히카리. 아들을 대신해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얻게 되는 성장은 전형적이되, 그 화법에는 분명 야쿠쇼 코지만의 어떤 것이 묻어난다.

특히 나는 꽤나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아들의 죽음을 맞는 순간에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끝내 유머러스한 설정들로 채워 넣으며 죽음을 삶의 일부로 껴안는 낙관의 힘이 좋았다. 영화 속 주연을 맡은 야쿠쇼 코지는 죽은 아들의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게 말한다. “나는 화가 날 때 그냥 크게 웃어.” 그 말처럼, 그에게 아들과의 사별은 차라리 유희와도 같은 이벤트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아들의 유골을 묻기 위해 아들 친구와 떠나는 여정 속에서, 그가 얻는 성장은 단순히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수되는 어떤 깨달음을 애써 북돋우는 과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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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야쿠쇼 코지는, 이를테면 숲속에서 조우한 곰과의 싸움 등 일련의 엉뚱한 해프닝들을 쭉 나열해 보여주면서, 무심결에 드러나는 관계와 심상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계기로써 주인공의 유년기 기억 속에서 각인된 두꺼비 기름 장사의 행복했던 추억이 소환된다. 허풍쟁이였던 두꺼비 장사가 그에게 보냈던 위안과 격려가 새삼 의미를 얻어가는 과정. 그들과 얽혀 있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 시제인 것처럼 풀어내는 소환의 방식은 꽤나 독특한 방식으로 울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그는, 이런 일련의 상황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 놓음으로써, 관습적인 감정 이입을 애써 기피한다. 아들 친구와 함께 숲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태양 빛을 바라보며 그는 말한다. "때론 인생에서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해."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어떤 것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듯, 그의 영화도 딱 그렇다.

더구나 나는, 울라고 뺨 때리는 감동 서비스 영화의 홍수 속에서, 애써 강요하지 않는 눈물이 있어 <두꺼비 기름>에 더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내 옆 자리에 앉은 관객은 영화 후반부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대사가 나온 뒤부터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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