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을 보내며

음악 이야기 2009. 6. 28. 11:28 Posted by cinemAgora
어딜 가나 마이클 잭슨이다. 라디오를 틀어도, 클럽에 가도 귀에 익은 마이클 잭슨이 흘러 나온다. 금요일 밤 들른 클럽에서 'Billie Jean'을 틀길래 나는 술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저 노래 무슨 내용인지 아세요? 저게 말이죠, 빌리진이라는 여자애가 자꾸 마이클 잭슨을 스토킹하는 거야.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마이클 아이라고 우기는 거지. 그래서 마이클 잭슨은 절대 그런 일 없었다, 빌리진은 내 애인도 아니고, 그 아이도 내 애가 아니다, 이렇게 절규하는 내용이랍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이 그런다. "참 어이 없는 내용이군요."

그렇다. 마이클 잭슨은 그렇게 '어이 없이' 80년대를 강타했었다. 잭슨 파이브 시절 그 청아하고도 천사같은 목소리의 소년 마이클이 아니라, 허리 아래를 가만 두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흰색 장갑을 낀 큰 손으로 벨트 아래를 어루만지는, 살벌하게 불온한 청년 마이클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문외한인 내가 논할 수 없으되, 아무튼, 가히 뮤직비디오의 혁명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Beat It'과 'Billie Jean', 그리고 'Thriller'를 통해 그가 보여준 시청각적 충격만큼은, 단번에 전세계인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깡패들의 패싸움 현장에서 현란한 춤사위로 화해를 부추기고, 심지어 땅 밑에서 올라온 좀비들과도 춤을 췄다.

그는 엉덩이를 박자에 맞춰 앞 뒤로 퉁기는 사뭇 음란해 보이는 동작이 거꾸로 꽤 세련돼 보일 수도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엔터테이너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 워크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마치 발에 바퀴가 달린 듯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뒤로 가는 동작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80년대의 적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의 신발을 닳게 만들었다.(나는 특히 그가 제기 차듯 허공을 발로 차는 동작을 사랑했다.) 그는, 거리의 춤을 가장 화려하게 무대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장본인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이른바 스트리트 댄싱의 전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했다.

그의 전성기가 나의 10대 시절과 중첩돼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이클 잭슨이 갖는 문화적 함의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그는 8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나풀나풀 벗어나고 싶은 당대 한국 대중의 욕망과도 꽤 잘 맞물렸던 것 같다. 미국 또는 팝 하면 백인을 먼저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백인보다 백 배는 더 멋진 흑인 영웅의 탄생이 주는 묘한 쾌감이 남달랐던 것이다. 버젓이 브라운관을 타고 흐르는, 그의 불온하고도 음란하며 도발적인 몸짓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에선 '해방'이었다.

그 뒤로 이어진 마이클 잭슨의 생애는 모두가 알다시피, 영욕의 점철이었다. 날기를 소망했지만 끝내 추락하고 만 이키루스의 운명을 닮았다. 그 와중에 그의 영혼과 육신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패였다. 한때 그의 날랜 육체로 피를 나르던 심장이 불현듯 박동을 멈췄다.

영웅은 시대의 상처를 껴안고 간다고 하던가. 육신에서 벗어난 마이클 잭슨이, 동시대인들에게 그가 안겨준 어떤 쾌감만큼, 진정한 해방의 안식을 얻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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