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까 올해 나온 한국영화는 죄다 봤다. 아직 연초인데다 극심해진 개봉작 가뭄 탓이겠지만,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빼면 <유감스러운 도시>부터 <키친> <마린보이>까지 썩 만족할만한 영화가 없어 내심 불만이던 차에 모처럼 하나 건졌다. 이호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작전>, 요거 그럭저럭 물건이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는 주가 조작을 다룬 범죄 스릴러 영화다. <범죄의 재구성>처럼 인물들의 잔머리 싸움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하이스트 무비'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영화의 진정한 쾌감은, 그러나 플롯의 정교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두가지다. 하나는 '주식 장난'을 매개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살풍경을 기가 막히게 통찰하고 있는 대사와 상황. 또 하나는 배우 박희순이 선사하는 감칠맛이다.
줄거리는 포털 영화 페이지 검색해보시고, 아무튼 이 영화에는 꽤 각인될만한 몇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강현수(박용하)가 룸살롱에서 그의 공범들과 이른바 통정거래를 모의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과정에서 부도덕한 증권 브로커 조민형(김무열)은 얼음통에 양주를 가득 붓고는 접대부 아가씨에게 '원샷'할 것을 권한다. 아가씨는 "미쳤어?" 하지만 이내 그들이 내놓은 백만 원 짜리 수표 한장에 일말의 주저함 끝에 양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기 시작한다. 강현수가 그만 하라고 외치자 조민형은 "누가 강요했어?" 반문한다. 그러자 현수의 한마디. "그게 강요 아니고 뭐야?"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주인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주인이다. 사실은 돈의 노예가 된 인간들은 쉽게 비굴해지지만, 돈의 논리는 그들이 마치 자발적으로 행동한 것처럼 만든다. 모든 패가망신의 잘못은 탐욕을 포기하지 못한 이들에게 환원된다. 욕망은 무죄다. 다만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인간이 유죄다. 그것이 자본주의다. 주식 시장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여기 대박이 있다고 유혹한 시스템이 죄가 아니라, 그 시스템에 이성을 저당잡힌 이들이 끝내 바보들일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멍청한 개미들의 희생을 대가로 거액을 챙기려드는 음모 역시 돈의 부름에 화답한 것일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무죄다. 다만, 누가 더 영악하게 움직이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영화 <작전>은 이처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군상 안에서 우리의 현재적 풍경을 퍼올린다. 그 풍경은 낯설지 않아서 아프고, 한편으로 통쾌하다.
스스로도 욕망의 감옥에 견고하게 갇혀 있으면서 나름 개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척 하는 조폭 출신의 황종구(박희순)는, 바로 그런 아이러니를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는 인물이다. 그는 머리와 폭력을 동시에 써서 남의 등을 처 먹는데 익숙하지만, 그것이 부메랑이 돼 자신의 목을 칠 것이라는 위험도 안다. 그래서 박희순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빌어 그가 날리는 대사는 불안을 내포한 호언장담에 불과하다. 그의 대사가 하나하나 웃긴 건 그 때문이다. 어쨌든, 기획과 연출의 몫 빼고는 영화의 절반쯤을 박희순이 건진 것 같다.
지난해 <추격자>로 잭팟을 터뜨렸던 영화사 비단길의 작품. 2월 12일부터 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