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자를 하는 동안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배우를 꼽는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가 송영창이다. 그가 이명세 감독의 <형사: 듀얼리스트>(2005)에 나왔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 인터뷰 섭외를 넣었다. 허나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어떤 언론 인터뷰도 응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란 게 홍보 담당 직원의 전언이었다. 아쉽지만 이해할 수 있긴 했다. 짐작컨대, 그는 여전히 몇 년 전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그로선 매우 불명예적인 사건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은 듯 했다. 그 와중에 언론을 통해 입을 연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왠지 아쉬웠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서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사실상 잊혀진 배우가 되다시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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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송영창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촉망 받는 배우 가운데 한명이었다.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 KBS 탤런트로 들어간 뒤 샤프하고도 젠틀한 이미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 유명한 '결론은 버킹검' CF에 그가 모델로 등장했었다는 걸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특히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 비록 흥행에선 쫄딱 망했지만 김혜수와 공연한 <첫사랑>(1993)에선 여주인공 영신이 짝사랑하는 연극반 선생님으로 분해 연기자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명세 감독은 걸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그를 다시 캐스팅했는데, 아쉽게도 주연은 아니었다. 허나 짧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 그 유명한 40계단 살인 사건 장면에서 안성기의 칼에 찔린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주인공이 바로 그였다. 송강호 주연의 <반칙왕>(2000)에서 툭하면 주인공에게 헤드록을 걸어 괴롭히는 은행 부지점장 역도 그가 아니라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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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몇 해 전, 시내 극장에서 언뜻 그를 본 적이 있었는데, 무려 4시간이 넘는 라스폰트리에의 <킹덤> 심야 상영을 보러 간 자리였다. 관객들 사이에 끼어 이제 막 볼 영화에 대한 설렘을 품고 있는 그의 표정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하기에 얼마 안 있어 그와 관련해 들려온 불미스러운 소식을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아무튼 그 이후로 그를 어디에서든 볼 수 없었다.

연기 생활로의 복귀를 (조용히) 알렸던 <형사: 듀얼리스트>에서 송영창은 다시금 연기자로서의 저력을 힘있게 웅변했다. 탐욕에 눈먼 병조판서로 분한 그는 굉장한 파장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역할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작 <놈놈놈>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그는 잇따라 악역만 맡았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공개된 해당 영화의 스틸 가운데 송영창이 나온 컷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딱 하나 건졌다. <그 놈 목소리>의 노반장 역, 하지만 사진 속에서 그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돌아왔지만, 그리고 누구보다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연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기껏 중경 안의 한 인물로 처리된 아래 사진처럼, 여전히 포커스 바깥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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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황정민과 함께 연극 <웃음의 대학>에 출연한다길래, 오늘 보러 갔다. 일단 많이 늙었다. 얼굴과 배에 살이 많이 붙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의 진심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작렬하고 있었으니, 황정민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그의 내공은, 장난이 아니었다.

미타니 코우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에서 그는, 젊은 연극 연출가의 극본을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천황폐하 만세'라는 대사를 세 번 이상 추가하지 않으면 공연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일본인 검열관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검열을 하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연극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만다. 결국 평생 웃지 않고 살던 그는, 무려 여든 번이 넘게 배꼽 빠지게 웃을 수밖에 없는 대본을 극작가와 함께 합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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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태평양 전쟁기의 일본이라는, 암울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실은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연스레 일깨우고 있다. 인간 내면에 숨은 유희의 욕구, 보편적이기에 위대한 예술혼의 잠재력을 포복절도할 웃음에 실어 가볍게, 아주 가볍게 웅변한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다.

이 연극에, 게다가 검열관 역에 송영창이 나선 것은 더 없이 적절했다고 믿는다. 배우 송영창의 무대 연기를 가까이서 보니 반갑기도 하거니와, 잠재된 예술적 기질을 끄집어내는 검열관이라는 인물은, 관객과의 교감이라는 배우로서의 본능을 끝내 재확인하고 있는 송영창, 그 자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덧붙임) 일본에선 이 작품이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말미의 설정이 반일 감정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지 국내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무튼 연극은 12월 중순까지 연장 상영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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