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각 종 매체를 통해 소위 설문지라는 것이 전달된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음악계의 대표적인 사건, 사고나 발표된 음반에 대한 총평을 부탁해 오는 것이다. 
올 해도 몇 몇 잡지와 방송에서 설문지를 받았다.
세부 질문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그 대략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샘플이 될 만한 것을 하나 골라 공개해본다.
2008년 가요계의 흐름에 대한 대충의 이해는 가능할 것이다.

다음 질문과 답은 패션지 vogue 12월호에 실릴 설문 조사의 일부이다.
책에는 다른 컬럼니스트들의 답변들도 담기겠지만 블로그엔 내가 기재한 부분만 발췌했다.


1. 당신이 생각하는 '올해 발표된 가장 혁신적인, 눈에 띄는, 신선한 가요는? 어떤 점에서?'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흥행 주류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아마추어 밴드들의 경연장처럼 변질되어가는 인디 씬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약진, 혹은 데뷔는 꽤 인상적이다. 산울림의 음반을 2008년 버전으로 복각해 놓은 듯한 리듬과 멜로디 라인은 7, 80년대를 직, 간접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 충분히 유효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극단적으로 사변적인 가사와 판소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자유분방한 랩 역시 전시대에 빚진바 크지만 장기하라는 필터를 거치며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2. 당신이 인정하는 올해의 프로듀서는? 어떤 점에서?

/ 나잠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에서 별로 한 일 없어 보이는 프로듀싱이 맘에 든다. 고수의 프로듀싱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사람은 참 좋다'라고 장기하가 소개하지 않았던가? 그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3. 2008년 가요계에서 가장 거품이었다고 생각되는 인물, 혹은 앨범, 혹은 사건이 있다면?

/ 김건모, 신승훈을 중심으로 한 기성 가수들의 컴백 앨범과 그 소식을 전한 모든 매체의 호들갑. 한 시대의 흥행 가수들이 돌아온 것에 대한 향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들 방식의 음악이 현재의 음악 씬에 화제가 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100만 장 판매 시절의 벨 에포크를 추억하는 이벤트치곤 너무 과했던 듯.


4. 진정 뮤지션이라고 부를만한 이는 누군가? (올해 음반을 냈거나 혹은 음반을 내지 않아도 어떤 행보를 보였다면 누구나)

/ 글쎄...


5. 가장 영리하고 수완이 좋다고 생각 드는 뮤지션은?

/ JYP 사장님. 원더걸스의 음악과 이미지 연출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대중음악이니 대중이 사랑하고, 그 상품들을 제작한 사람들은 괜찮은 벌이로 행복하다. 해피엔딩이 분명한데 왜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칼럼니스트와 평론가들만 난리를 치는 걸까? 물론 난리를 치건 말건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 JYP의 뛰어난 상황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이건... 분명 칭찬이다.


6. 올해 나온 신인 중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거나, 신인 아니라도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뮤지션이 있다면?

/ 섣부른 예측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고, 다음 앨범 나올때까지 술 독에 빠져 있을지, 연습실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7. 비쥬얼, 패션,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 등이 가장 인상적인 뮤지션은?

/ 슈퍼 키드. 디스코와 펑크, 팝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상업적으로 버무려내는 솜씨가 그리 나쁘지 않다. 특히 아동스런 유니폼으로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화려한 율동(!)과 더블 프론트맨이라는 독특한 구성은 공연에서 분명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확실한 킬러 트랙이 아직 없다는 것. 2009년 펜타 포트의 황금 시간대에 서기 위해선 필수 과제.


8. 빅뱅의 '똥 싼 바지(그들의 패션)'가 가요계에 미친 파장은? '간지 나는' 아이돌 빅뱅을 음악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음악보단 간지가 중요해졌고, 그 간지를 미치도록 따라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인터넷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 입시지옥은 아이들에게 연예인을 꿈꾸게 했고, 그 꿈은 또 다른 연습생 지옥으로 기꺼이 그 아이들을 인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 호객군 대표선수가 현재는 빅뱅인 셈이다.
 

9. 당신이 예상하는 원더걸스의 10년 후 모습은?

/ 10년 후까지 원더걸스를 봐야한다고?


10. 조피디+주현미, 엄정화+TOP... 남녀노소, 장르를 불문하고 이처럼 피처링이나 콜레보레이션을 하면 의외로 어울릴 것 같은 짝을 지어본다면? (작곡가와 가수, 프로듀서와 가수, 디제이와 가수, 가수와 가수 등 상관없고요)

/ 배철수+보아. 가장 상투적인 조합형이 되겠지만 전시대 뮤지션과 현재 톱클래스 뮤지션의 결합은 의외로 화학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호테이 토모야스처럼 연주하는 배철수와 싱싱한 보아의 보컬이 어우러지는 앙상블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11. 이제 지상파의 연말 시상식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혹시 당신이 한 번이라도 상상해 봤던 시상식이 있나? 최악의 가수, 최악의 노래만 뽑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처럼. 시상도 해보자.

/ 연말 시상식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이벤트이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예상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이다. 그러니 제발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시상을 하란 말이다. 기획사의 송년회는 자기들 사무실에서 하게 놔두고.


12. 올해, 서태지가 돌아왔고, 김건모와 신승훈과 비도 다시 왔고, 조성모마저(?) 컴백했다. 이들의 컴백이 가요계에 어떤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 서태지는 음악적으로 한결 편해졌고, 김건모는 김창환과의 재결합을 통해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신승훈은 늘 그렇듯 그런 음악이고, 조성모는 아직 못 들어봤다. 그리고 우린 이들의 컴백이 별다른 활력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현재 확인하고 있다.  


13. 한류는 여전히 살아 있는가?

/ 현대 자동차와 삼성 핸드폰이라고 항상 수출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GNP가 우리보다 훨씬 떨어지는 동남아시아가 있는 한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문제는 그래봐야 동네 골목대장 신세라는 것이지만.


14. 올해, 인디 씬에서 약진한 뮤지션을 뽑아 보자면.

/ 인디 씬에서 약진한다고 오버가 되는 것은 아니니 별 의미 없는 질문이다.


15. 돈이 아깝지 않았던 올해의 음반을 3개만 뽑아보자.

/ 브라운 아이드 걸스 [My Style]. 안다. 몇 몇 사람들이 돌 던질 것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개인적인 취향이다.
/ 김동률 [Monologue]. 전작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지만, 평균은 하는 김동률의 목소리.
/ 넬 [멀어지다]. 마흔 살에도 음악 듣다 눈물 흘릴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앨범.


16. 2008년 가요계의 키워드는 뭘까?

/ 2007년 혹은 2006년의 재탕.


17.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뮤지션은 누굴까?

/ 몇 년 째 생각 중이다.

 

18. 괜찮은데 썩 알려지지 못하고 묻혀버린 것 같은 음반이 있다면?

/ 웅산 [Fall In Love]. 언젠가부터 이런 종류의 지면은 인디 록 씬의 앨범들이 점거해버린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감히 추천해 본다. 웅산은 좋은 재즈 보컬이다. 감정을 드러내고 절제하는 균형 감각이 훌륭하다. 스탠더드 넘버들로 채워진 이 앨범을 걸작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괜찮다는 평가를 받기엔 모자람이 없다. 가끔은 재즈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 내자.




이 쿨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구나 음악은 훨씬 더 훌륭하다.
음원을 올릴 수 없음이 아쉽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들어보시길.
한 가지 당부는 음악을 먼저 충분히 듣고, 화제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시길 바란다.
음악이 가진 진정성이 뮤직 비디오의 유쾌한 퍼포먼스로 희석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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