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에 대한 시답지 않은 불만

TV 이야기 2008. 11. 15. 22:05 Posted by cinemAgora
연말이 다가온다. 바야흐로 시상식의 계절이다. 누가 누가 더 멋진 옷 입었나, 어떤 여자 연예인이 더 아량 넓은 가슴골과 호혜주의적 등짝을 보여주나 시합하는 계절이다. 상 주고 감동의 눈물 질질 짜고, 감사 리스트 죽죽 읊고, 늘 그렇듯 어색한 진행에 눈살 찌푸려져도 해가 가도 한 치의 변함 없는, 그, 바로 그 시상식의 계절이 다가온 곳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러므로 그 유치무쌍한 연말 퍼포먼스에도 시청자들은 적응한다. 결코 잘 한다는 얘기 아니다. 익숙해졌으니 그러려니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좀 짚고 가고 싶다. 시상식을 기획하고 있는 프로듀서라면 제발 귀를 기울여 주시라.
 
시상식이란 게 일정한 포맷이 있기 마련이어서 대부분은 사회자가 시상자를 소개하고 시상자가 수상자를 호명하는 방식이다. 내가 딴죽을 걸고 싶은 건 시상자를 소개할 때의 관행이다. 시상자를 소개할 때 이름 앞에 따라 붙는, 이를테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혹은 대한민국 최고의, 따위의 낯뜨거운 수사야 참을 수 있다.

헌데 호명된 시상자가 무대 위에 올라오면 어김 없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호명한다. "안녕하세요. 아무개입니다." 모르나? 방금 사회자가 본인을 소개했다는 걸? 자막까지 친절하게 시상자의 이름과 직업을 소개해준다. 이렇게 보면 무려 세 번이나 시상자의 이름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시상자들이야 딴엔 예의를 갖추는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름을 두 번 연거푸 들어야 외울 정도로 시청자가 바보는 아니다. 게다가 시상자로 나올 정도면 왠만하면 다 아는 연예인들이다. 이름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그렇게 없냔 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시상식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아카데미나 MTV 어워드에서 그 어떤 시상자가 나와서 "헬로우 마이 네임 이즈..."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런 관행이 비단 시상식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 시사회 무대 인사에서도 배우들은 "안녕하세요, 아무개입니다."를 잊지 않는다. 마치 그 말을 하지 않으면 큰 결례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다. 호명자에 이어 두 번이나 자기 이름을 강조했으니 그게 결례다.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우리 조상들께서는 과유불급의 미덕을 설파했다. 예의도 지나치면 결례가 된다고 하셨다.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 과잉 친절에는, 저 녀석이 날 업신여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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