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나의 단골 저녁 코스

별별 이야기 2007. 7. 14. 00:1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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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하면 많은 분들이 클럽들을 떠올린다. 아슬아슬한 치마를 입고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는 녀들이 인기 많은 클럽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좋게도 홍대앞의 진수를 안다. 홍대 앞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그래서 홍대앞 스피릿을 몸소 체현하는 주인장들을 안다. 그래서 나의 홍대앞 기행은 매번 단골집을 순회하는 코스로 점철된다. 그들을 보고 오면 삶은 다시 즐거움으로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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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워줘야 한다. 산울림 소극장 앞에 위치한 '오리엔탈 브런치'가 딱이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값도 싼데다 엄청나게 맛있다.

두번째 이유, 주인장들이 직접 베트남과 태국 등에서 공수해온 나무 수저와 장식물들이 작은 가게를 앙증맞게 장식하고 있는데다, 이곳 단골들인 문화 게릴라들이 자신들의 행사를 알리는 벽지를 붙여 놓아 정보 수집에도 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0대 중반의 용감 무쌍, 재기발랄 여성 주인장들과는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아내의 지인들)인데다, 그래서 이 가게의 이름을 내가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노동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열정적으로 노는 그들을 나는 언제나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뿐더러, 내 삶의 가식적인 부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어쨌든 여기서 늦은 저녁을 챙기고, 주인장들이 일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왜? 그들과 놀아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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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브런치의 열혈 주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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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 짜리 준마이 사케를 시켰다.

오리엔탈 브런치 건너편, 그러니까 산울림 소극장 오른편에 나 있는 철도길(지금은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을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면, '光'이라는 일본식 선술집이 나온다. 한 열 명 들어가면 자리가 꽉 차 들어설 자리가 마땅치 않지만, 이 집에선 진짜 맛있는 안주들을 판다. 오뎅과 꼬치가 기본 메뉴이긴 한데, 연어 초회라든가, 겨울철에만 하는 고등어 초회, 메로 구이 정도는 먹어줘야 이 집의 진수를 알게 된다. 여기에 통 크게 2만 원짜리 준마이 사케를 시키면 달큰하게 취할 수 있다. 정종 먹고 취하면 애비도 못알아본다던가? 못알아볼 애비가 없어 그건 잘 모르겠으나, 기분이 삼삼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후덕하게 생기신 배불뚝이 주인 아저씨는, 이 집의 마스코트다. 아주 아주 귀여우신데다, 인심도 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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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도 음식 갖고 장난치지는 말자. 잘못하면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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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에서 적당히 취했으면 이제 놀 차례다. 다시 산울림 극장 쪽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주택가 쪽으로 내려 서는 계단을 따라 아는 사람만 아는 '꽃'이라는 클럽이 도사리고 있다. 여긴 마치 도둑놈들, 또는 마약 중독자들의 소굴마냥, 담배 연기 그득하고 벽은 온통 누런 색이다. 수천장의 LP, 그리고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이 집에 헌납한 각종 그림들(그 중엔 주인장의 초상화도 있다), 그리고 주인장의 역맛살을 짐작하고도 남을 사진들이 시야가 허락하는 한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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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벽들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나 밥 말리를 사랑하는 주인장 미진씨는, 실제 가수 출신이다. 노래를 썩 잘하는데, 요즘은 브라질 음악에 심취해 삼바 스쿨을 열기도 했고, 얼마전엔 서울여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연도 했다. 아무튼 이 집에서 트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다 보면, 도통 초면인 누군가가 옆에서 같은 음악에 취해 흐느적 대고 있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기 일쑤다. 부비부비같은 리비도 과잉의 짝짓기 몸부림은 없다. 여긴 그냥 호모 루덴스적 인간들이 스스로 유희하는 인간임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공기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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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론 미진씨에겐 '마티스'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와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그의 풀 네임은 류마티스!



자, 이렇게 세 단골집을 돌고 나면 어느덧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서기 일쑤다. 취기가 돌면 치기가 생긴다. 아래 사진은 그 결과물로서의 나다. 주인 모를 스쿠터에 올라타 잔뜩 폼을 잡고 앉아, 나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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