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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오락적 기능을 수행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도 그 가운데 한 명이죠.

아프가티스탄 난민들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발시켰던 <인디스월드>에 이어 그는 아무 죄 없이 미군에 전쟁포로로 붙잡혀 2년이 넘도록 갇혀 있던 세 명의 중동 출신 젊은이를 통해 또한번 문명 사회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야만의 풍경을 고발합니다.

지난해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에 빛나는 걸작 <관타나모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들은 사악하다는 것입니다." - 부시 미 대통령

미국이 이른바 사악하다고 믿는 무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시작했을 때, 911 테러의 충격으로 휩싸여 있었던 2001년 9월. 파키스탄계 영국인인 아쉬프의 증언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엄마가 제게 파키스탄에 가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결혼을 위해 부모님의 고향 파키스탄에 온 아쉬프. 신부를 보고 결혼을 결심한 그는 영국에 있는 친구들을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루엘과 샤피크, 모니르 등 세 명의 친구들은 아쉬프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함께 파키스탄행 여행에 동행하게 되죠.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당시 젊은이들의 인터뷰와 배우를 등장시켜 그들의 여정을 재현한 화면, 그리고 당시의 자료 화면을 교차하면서 보여줍니다. 이처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방식은 실제 벌어졌던 영화 내용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인 거죠.

당시 파키스칸에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항의하는 사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정국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아버지의 나라를 다시 찾은 젊은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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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이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젊은이다운 모험심과 치기,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길일텐데, 무엇보다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여행이었지만 네 친구는 흔쾌히 아프가니스탄 행 버스에 오릅니다.

마침내 도착한 국경 지대, 전쟁을 피하기 위한 난민들의 행렬로 이곳은 벌써 아수라장이 돼 있습니다. "칸다하르에 도착하니 폭격이 시작됐어요." 전쟁은 그들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죠.

말로만 듣던 전쟁의 공포를 실감하니 잔뜩 겁을 먹은 표정들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들은 그들 앞에 더욱 끔찍한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황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카불로 옮겨와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레 영국에서 먹던 피자가 떠오릅니다. 괜한 길을 온 것일까? 그들은 결국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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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은 이들의 귀환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연합군의 폭격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급히 피신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동행한 친구 가운데 한명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급한대로 먼저 피난 트럭에 올라탔지만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때 폭격이 시작됐어요." 점점 가까워 오는 폭격과 총성,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남의 일로만 알았던 전쟁의 공포가 이들 젊은이들에게도 현실이 된 것입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희생자들의 어이 없는 주검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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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탄 트럭이 연합군에게 붙잡히면서 세 명의 젊은이 역시 아무 이유 없이 탈레반으로 몰리게 된거죠. 자초지종을 설명할 겨를도 없이 전쟁 포로가 돼 어디론가 끌려가는 이들. 그리고 좁은 컨테이너 안에 숨쉴 틈도 없이 갇혀 버렸습니다. "옆과 밑에 죽은 시체가 있었어요."

북아프가니스칸의 포로 감옥에 갇힌 이들은 부족한 식량과 물, 좁고 지저분한 시설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영국에서 왔다는 사실은 오히려 연합군에게 다른 빌미를 제공하게 되죠.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영국에서 온 파키스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탈레반의 골수분자로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인간으로서 일말의 존엄조차 가질 수 없는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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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부시의 선언대로,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악한 존재들이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인 셈입니다.

이제 세 명의 젊은이들은 미군들의 포로수용소로 옮겨가게 됩니다.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와의 연루 의혹을 더욱 집요하게 추궁받기 위해서죠.  황당하면서도 어이 없는 상황,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중동 출신의 영국 젊은이들이 전쟁 상황 속의 아프가니스칸을 여행했다는 사실은, 테러 분자로 몰아붙이기엔 더 없이 좋은 알리바이였던 거죠.

세 명의 젊은이들은 결국 누명을 벗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군의 포로수용소가 있는 쿠바 관타나모로 옮겨가게 되죠.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관타나모의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적이며 대부분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부시의 이 말이 더 솔직해 보이는데요. "관타나모에 있는 이들은 살인자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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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영화는 세 젊은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 저질러진 포로들에 대한 인권 학대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보입니다. 동물 우리에 짐승들을 가둬 놓듯, 포로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그 야만적 상황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앞서 그 자체로 처절한 비극입니다. 사악한 무리와의 전쟁은, 이렇게 누군가를 아무렇게나 다뤄도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요?

문명 사회의 이름으로 자행된 거대한 야만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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