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경제학과 강의를 교양 선택으로 들었던 내 선배의 일화다. 나와 같은 역사학 전공의 그 선배는 수업보다 데모 나가기를 즐겨했고, F학점을 쌍권총 쏘듯 받는데 익숙한 인물이었다. 하루는 경제학과 교수가 매우 난감한 리포트를 숙제로 내줬는데, "매달 치러지는 민방위 훈련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얼마나 될지 계산하라"는 거였단다.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한 그 선배가 이 숙제를 제대로 했을 리 없다. 그는 대신 역발상의 재치를 발휘했으니, "민방위 훈련이 경제적 손실을 야기할지 모르겠으나, 그 20분의 시간동안이나마 모든 것이 멈춰서고, 지친 노동자들이 휴식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는 동안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요지의 답변을 제출했다.
다음 시간에 교수는 그의 리포트를 읽어 주며 "이 과제를 매년 냈지만, 이런 참신한 생각을 들어 본적이 없다"며 "이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선배는 입학 이후 처음으로 에이 플러스 학점을 받았다.
최근 촛불 집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조 원에 이른다는 한국경제원구원의 보고서를 보며, 문득 아주 오래전 그 교수와 선배의 일화가 떠올랐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기를 좋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만큼, 그런 보고서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나는 그 보고서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음을 본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치'이며, 시민들이 만끽한 광장의 에너지다.
물론 이런 얘기는 경제 최우선주의 시대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씨알도 안먹힐 소리일 것이다. 그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감격의 시선으로 끌어 안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의 잣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에이 플러스를 받은 선배의 답변을 빌어 말하자면, 한국경제연구원은 그딴 느자구 없는 계산 할 시간에 좀더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내 직업이 영화기자라 틈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극장가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마찬가지다. 힘 센 배급사의 영화가 대중의 수요를 빙자해 600-700개의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타당할지도 모른다(사실 경제학적으로도 독과점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정론이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승자 독식의 경제학으로는 관객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다분히 인문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극장가에는 오로지 장사꾼의 논리만 횡행하고 있다. 이미 돈의 노예가 된 영화계는 문제는 알아도 고칠 생각은 엄두도 못낸다.
가격이 아닌 가치를 말하는 것은 점점 촌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대학 사회에선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노동자의 휴식, 민주주의적 체험, 그리고 문화 다양성의 잠재적 가치를 강변할 수 있을까. 인간답게 '더불어' 사는 미덕을 논할 수 있을까.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한 그 선배가 이 숙제를 제대로 했을 리 없다. 그는 대신 역발상의 재치를 발휘했으니, "민방위 훈련이 경제적 손실을 야기할지 모르겠으나, 그 20분의 시간동안이나마 모든 것이 멈춰서고, 지친 노동자들이 휴식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는 동안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요지의 답변을 제출했다.
다음 시간에 교수는 그의 리포트를 읽어 주며 "이 과제를 매년 냈지만, 이런 참신한 생각을 들어 본적이 없다"며 "이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선배는 입학 이후 처음으로 에이 플러스 학점을 받았다.
최근 촛불 집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조 원에 이른다는 한국경제원구원의 보고서를 보며, 문득 아주 오래전 그 교수와 선배의 일화가 떠올랐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기를 좋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만큼, 그런 보고서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나는 그 보고서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음을 본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치'이며, 시민들이 만끽한 광장의 에너지다.
물론 이런 얘기는 경제 최우선주의 시대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씨알도 안먹힐 소리일 것이다. 그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감격의 시선으로 끌어 안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의 잣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에이 플러스를 받은 선배의 답변을 빌어 말하자면, 한국경제연구원은 그딴 느자구 없는 계산 할 시간에 좀더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내 직업이 영화기자라 틈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극장가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마찬가지다. 힘 센 배급사의 영화가 대중의 수요를 빙자해 600-700개의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타당할지도 모른다(사실 경제학적으로도 독과점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정론이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승자 독식의 경제학으로는 관객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다분히 인문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극장가에는 오로지 장사꾼의 논리만 횡행하고 있다. 이미 돈의 노예가 된 영화계는 문제는 알아도 고칠 생각은 엄두도 못낸다.
가격이 아닌 가치를 말하는 것은 점점 촌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대학 사회에선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누가, 노동자의 휴식, 민주주의적 체험, 그리고 문화 다양성의 잠재적 가치를 강변할 수 있을까. 인간답게 '더불어' 사는 미덕을 논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