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 興 業 (흥 UP)


여론조사의 함정을 논할 때 마다 등장하는 사례가 있다. 1936년 루즈벨트와 랜던이 맞붙은 미국 대선에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가 1000만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공화당 랜던 후보의 압승을 예측했다가, 거꾸로 루즈벨트의 압승으로 끝나는 바람에 역사상 최악의 오보를 냈던 일이다.

당시 여론조사가 실패한 이유는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한 부유층에서 표본을 추출한데다, 응답률 마저 24%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표본 선정과 응답률이 얼마나 중요한 변수인 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이다.

선거 때 마다 6시만 되면,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끌어 모으는 방송사 출구조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비록, 오차범위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어쩌면 그리도 잘 틀리는 지, 수십억원을 쏟아 붓는 방송사들도 허탈하고, 시청자들도 짜증스럽다. 조사를 진행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또 얼마나 좌불안석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지?

우리나라 선거법에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이 존재한다. 자칫,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의 '사표 방지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생긴 규정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자체까지 금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모든 언론사들은 공표 금지기간중에도 조사를 계속한다. 돌발변수에 의한 판세 변화를 감지하려는 이유도 있겠으나, '추세'를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만으로 판세를 예측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측치는 번번이 빗나가는 걸까?

이번 총선에서 각 언론사가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20~30%에 불과했다. 거기다, 응답자의 입장에서 전화조사 방식은 '신분노출'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조사자가 아무리 익명성을 대전제로 내세운다고 해도,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만으로는 조사자의 신분과 의도에 관한 불안감이 완벽하게 제거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인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표현하길 두려워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과감한 정치적 '커밍아웃'조차 기꺼이 받아 들이지 않는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고, 유권자 역시 이를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미국과 달리, 연예인들의 정치적 '커밍아웃'을 달가워 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만 봐도 그렇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익명성이 보장된 여론조사에서도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응답률이 낮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익명성을 담보로 과감하게 '커밍아웃'을 선택한 응답자들은 과연 자신의 진심을 드러 냈을까?

우리나라에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개인 보다는 집단이 우선이고, 자신만의 개성 보다는 주류의 흐름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특징을 잘 드러낸 속담이다. 지금 당장, 거리를 나가봐도, 자신의 체형과 개성 보다는 유행에 따라 옷을 입은 이들이 '차고 넘치는' 게 바로 한국이다. 패션에서도 주류를 좇는 특성은 정치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된다.

누구나 인정하듯, 이번 총선의 주류는 한나라당이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200여석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비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쉽사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가 힘든 분위기였다. 비한나라당 지지자임을 밝히는 순간, 비주류로 분류되는 터이니,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거짓 응답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봐야 한다.

이같은 추측은 지난 17대 총선의 사례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탄핵정국'속에서 치뤄진 17대 총선의 주류는 열린우리당이었다. 탄핵심판론이 광풍처럼 선거판을 휘몰아 쳤던 그 때.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감추고 탄핵심판론이라는 주류에 동참하는 것 처럼, '거짓 응답'을 한 뒤, 실제로는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다. 덕분에,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과반을 예측했던 출구조사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한나라당은 120석을 얻었다.

17대와 18대 총선의 판세를 기반으로 여론조사 결과와 개표 결과를 비교해 보면, '모난 돌'을 기피하는 한국인들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여론조사의 무응답과 거짓 응답의 원인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난다 긴다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국인들의 특성을 모르는 것일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네티즌들이 추측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한국인들의 특성에 관한 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진짜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여론조사에 임하는 한국인들의 심리학적 특성을 꿰뚫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은 바로 모든 조사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데이터'이다. 그게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말이냐고?

방송법에는 여론조사 발표시, 표본크기, 조사기간, 조사방법, 오차범위 등을 반드시 밝히도록 하는 강제 규정이 있다. 조사결과의 통계학적 근거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뜻이고, '로우 데이터(기초자료)'가 없는 조사 결과는 발표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이다. 한마디로, 근거(데이터)없는 조사결과 발표는 위법이란 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데이터'를 무시한 조사결과 발표가 문제가 되는 경우, 회사 문을 닫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면 쇠고랑을 차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론조사 기관들은 통계학적 근거(데이터)에 목숨을 건다. 불행히도 심리학이 적용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은 제시할 근거(데이터)가 없다. 판세를 좌우할 수도 있는 심리적 변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다. 섣불리 눈에 보이는 근거(데이터)를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특성을 대입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여론조사, 특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관한 조사의 경우, 조사기관은 물론, 이를 의뢰하고 발표하는 주체인 언론사들 역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치명적인 상황이 연출 될 수도 있는 게 정치와 관련된 여론조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오차를 일으키는 낮은 응답률과 거짓 응답을 간과한 게 아니다. 판세와 주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인들의 심리학적 변수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저지를 수 없다. 한국에서 눈에 보이는 '근거(데이터)'가 없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대입하는 짓은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깝다.

차라리, 예측이 빗나갈 지 언정, 빠져 나갈 '근거(데이터)'가 있는 게 낫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틀린다. 4년 후, 19대 총선 예측 역시 빗나갈 것이다. 주류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밝히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학적 변수 마저도 용인할 수 있는 너그러운 정치의식이 자리 잡는다면 달라지겠지만...      

* 사족 : 1936년 역사상 최악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는 그 조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Posted by PD the ripper
별별 이야기 l 2008/04/1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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